1997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상감이란 명칭은 장식될 부분을 정을 사용하여 무늬대로 파내고 그 안에 다른 재료를 채워넣거나 끼워넣는 기술을 일컫는 말로, 원래는 일본으로부터 차용되어 광복 후 공예 전반에 널리 쓰여 온 말이다.
오늘날 공예의 각 분야에서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되고 있으나 상감이란 말은 전통 금속공예로서의 전문용어는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이나 철 등의 금속 표면에 금실이나 은실을 끼워 장식하는 기술용어로 입사(入絲)라는 명칭이 있다. 이 명칭은 고려시대 향완(香玩)의 명문(銘文)과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입사란 금속에 다른 금속을 감입하여 장식하는 기술인, 흔히 상감으로 통칭되는 모든 관련기술을 포함하는 전통적 기술용어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상감입사’라는 용어는 같은 의미의 기술적 내용이 중복된 단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무늬를 선(線)으로 장식하는 경우를 ‘입사(入絲)’, 면(面)으로 장식하는 경우는 ‘상감(象嵌)’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고대 유물에서 보이는 입사의 양식은 각종 고리자루칼에 간결한 무늬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단순한 ‘끼움입사’식의 기술이 주류를 이룬다. 입사의 대표적인 예는 고려시대의 향로 · 정병 · 향합을 비롯한 불구류이며, 거울걸이 · 대야 · 수반 등과 같은 생활용품에서도 이 기술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고려식 입사의 특징은 주조된 청동제품에 가는 은실로 장식되는 ‘끼움입사’로서, 단조로운 세선(細線)의 미가 금속기의 조형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데 있다. 이러한 고려식 ‘끼움입사’는 정과 마치가 어우러져 표현해 내는 기술로, 감입되는 금속은 주로 은이 사용되었고, 드물게 금 · 구리, 특수한 예로 납도 장식되고 있다.
숙련된 장인의 손놀림에 의해 기예가 좌우되는 이 기술은 조선 초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으나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추면서 대신 철제에 문양을 베푼 입사기물이 등장하게 된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철제 은입사기법은 고려식의 ‘끼움입사’와는 구별되는 새롭게 발전된 방식으로서, 입사될 바탕금속을 촘촘히 쪼아 은실을 가득 메우는 수법인 ‘쪼음입사’로 새롭게 발전하였다. 상감입사장의 기능보유자는 김용운(金龍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