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임실 출생. 유기점을 해온 조부 윤화섭의 가문에서 출생하여 일찍부터 그의 고향인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원회촌에서 놋쇠 다루는 일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16세 되던 해부터 이웃 김여칠의 일터에서 징, 대야, 유반, 괭과리 등을 만들고 점차 기술이 늘면서 방짜 식기류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힘이 좋아 메질, 집게질, 가질 등 방짜쇠를 다루는 여러 가지 기술면에서 뛰어난 솜씨를 나타내었으며 특히 궁그름 옥성기의 장인으로 손꼽혔다.
1차 주조과정을 거친 후 궁그름대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완성되는 궁그름 옥성기의 제작방식은 주조와 단조가 어우러져 성형되는 일명 반방짜 방법으로써 소리와 색이 뛰어난 유기의 효율적 생산방법이라 할 수 있다.
25세가 되던 1939년 이후에는 임실을 떠나 순천의 김호유기점, 여수의 송행두유기점, 곡성의 옥과유기점 등지에서 유기제작에 종사하였다. 이후 순천 금곡동에 유기공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을 당시 뿌리깊은나무사에서는 전통문화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유기장을 찾게 되면서 당시 이름이 나 있었던 윤재덕의 방짜유기업을 후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79년 6월 전남 보성군 벌교읍 증광리 세동부락의 ‘가는굴 유기공장’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옥바리 방짜반상기를 만들면서 전통공예의 전승작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평생을 유기일에 바쳐온 그간의 업적으로 1983년 6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유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97년 기능보유자로 인정된 한상춘(韓相椿)은 그의 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