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말기의 관직.
내용
이색(李穡)이 지은「광통보제선사비명(廣通普濟禪師碑銘)」에는 1377년(우왕 3) 당시의 재추 49명의 명단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상의가 19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고려말에 재추의 수가 매우 많았음과 그 중에서 상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러한 현상을 관제의 문란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양반 수의 절대적인 증가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되었다. 즉, 관직 수는 적은데 비해 거기에 나아가고자 하는 양반 수가 많아짐으로 인해 그 과정에서 갖가지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관제의 문란도 야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事節要)』
- 『목은문고(牧隱文藁)』
- 「고려후기 도평의사사 연구」(김광철,『한국중세사연구』5, 1998)
- 「고려후기 도평의사사 체제의 성립과 발전」(김창현,『사학연구』54, 1997)
- 「고려말기의 첨설직」(정두희,『진단학보』44, 1978)
- 「고려도당고」(변태섭,『역사교육』11·12합, 1969:『고려정치제도사연구』, 일조각,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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