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집 2권 2책, 속집 1권 1책, 보유 2권 2책으로 합 5권 4책의 필사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박성흠(朴聖欽)의 외손 권복(權馥)이 1832년에 편집 · 간행하였다. 권두에 박종정(朴宗正)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본집 1책은 부록으로 가장(家狀), 세계, 유사, 잠(箴) 10편, 명(銘) 19편이, 2책은 시 62수가 실려 있다. 속집 1책은 시 39수와 서(序), 명, 제문, 서(書)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 1책은 서(書) 2편, 서(序) 2편, 제문 5편, 잠 1편, 찬 1편이, 2책은 시 63수가 실려 있다.
본집의 잠에는 자손을 경계하거나 자손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이 많다. 그중 「경차장남헌주일재잠운유시후승(敬次張南軒主一齋箴韻留視後承)」은 송대의 사상가 장식(張栻)의 「주일재잠(主一齋箴)」에 차운(次韻)하여 지은 것이다. 명에는 자손에게 권학하기 위해 『효경(孝經)』 · 『서산(書算)』 등의 서적에 붙인 글, 양심(養心) · 경(敬)의 중요성과 욕심을 멀리할 것 등을 강조한 글, 연적(硯滴) · 관기(盥器) · 거울 · 등(燈) 등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물에 붙인 것 등이 있다. 도량형(度量衡)으로 인해 분쟁이 자주 생기는 것을 보고 그 폐단을 읊은 「승두척형사명(升斗尺衡四銘)」은 이 시기 도량형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된다. 잠과 명은 서(序)를 붙여 지은 동기와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 많다.
저자는 안빈낙도하며 자연을 시로 읊었다고 하는데, 중국 한(漢) · 당(唐)의 시를 본받았으며, 성정(性情)의 바른 데서 나왔다는 평을 들었다. 자신이나 후손을 경계하여 지은 것이 많으며, 동해안의 명승지, 저자의 선조를 배향한 오관서원(五冠書院), 남한산성(南漢山城) 등을 찾아가 지은 것이 있다. 「세전적우탄(稅錢糴牛歎)」은 세 부담으로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읊은 것으로, 세주(細註)로 여결(餘結) · 은결(隱結) · 백지징세(白地徵稅) 등의 폐단을 적어 놓았다.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의 시집 『금양잡록(衿陽雜錄)』 가운데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에 화운(和韻)하여 지은 「우양(雨陽)」 · 「토초(討草)」 · 「과농(誇農)」 등 14수의 시는 농민의 고달픔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백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 중국의 하남자(河南子) · 주희(朱熹) 및 당대의 김인후(金麟厚) 등의 시에 차운하였다.
또한 보유 1책에는 첫째 아들 박장순(朴長淳)과 둘째 아들 박창순(朴昌淳), 그리고 며느리 김씨를 애도하는 제문이 있는데, 절절한 부친의 정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당쟁의 전개에 대한 재야 학자의 인식과 대응, 도량형 · 세 등의 문제점과 농민의 생활상 등, 이 시기의 사상사와 사회 경제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