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목판본. 1781년(정조 5) 7세손 동엽(東曄)·동익(東翊)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는 문집을 교정한 이상정(李象靖)의 서문과 세계도(世系圖)가 있고, 발문은 없다.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121수, 권2에 서(書) 16편, 선성잡영서(宣城雜詠序)·의(疑) 각 1편, 권3은 부록으로 행장·묘지 6편, 제문 8편·청천서원봉안문(晴川書院奉安文)·상량문 2편, 상주사림통성주문(尙州士林通星州文), 여지승람중어(輿地勝覽中語), 화암기문중어(華巖記聞中語)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당시의 부패한 정치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한편,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황폐된 국가의 처절한 참상을 비분강개한 필치로 읊어 우국충정이 담긴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적인 시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는 1564년(명종 19) 생원시 때 제출한 답안으로, 제목은 붙어 있지 않다. 사군지도(事君之道)와 성사지도(成事之道)에 대한 글로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에 근거한 정통적 유가사상에서 출발해 자신의 신념과 현실적인 개인적 체험을 통해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사군의 도’에 대해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옛날 유자(庾子)의 경우처럼 비록 임금의 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스승을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절충적 입장을 취하는 것도 일면의 타당성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성사의 도’에 대해서는 일을 성취해나가기 위해 최상의 수단을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수단의 정당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됨을 왕량(王良)이 말을 모는 고사를 예로 들어 서술하였다.
서 가운데 김부륜(金富倫)에게 답한 서한은 시사(時事)를 논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 운반문제와 적세(賊勢)의 동기를 살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