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치화(稚和). 예조판서 서유령(徐有寧)의 손자로, 서경보(徐慶輔)의 아들이며, 부사(府使) 서봉보(徐鳳輔)에게 입양되었다.
1874년(고종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해 홍문관부교리가 되고, 이어 부수찬(副修撰)을 지냈다.
1879년 선전관(宣箋官)을 지내고, 이듬해 증광사마시의 초시 시관(試官)으로 임명되었다가 출방(出榜) 과정에서 물의가 있었다 하여 북청부(北靑府)에 귀양갔다가 곧 풀려났다. 1886년 성균관대사성이 되고, 1887년 이조참의를 거쳐 공조참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