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산(連山). 자는 영수(永叟), 호는 우정(愚亭). 충청남도 홍성 출신. 서익중(徐益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06년 4월 민종식(閔宗植)이 점거한 홍주성(洪州城)에 전태진(田泰鎭)·전경호(田慶浩)와 함께 참가하여 동문영관(東門領官)에 임명되었다. 홍주성을 탈출한 관군과 일본군경이 홍주성 근처에 근거지를 정하여 적극적인 공격태세를 갖추고 재탈환을 획책하자 성의 사수에 힘썼다.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가 재경성 일본군 남부수비대사령관 혼조(本條)에게 명하여 포병·기병·헌병의 일부 및 보병 2개 중대를 긴급 파견하고, 이어서 홍주·공주·전주 일대의 헌병·경찰대 및 진위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대공격을 감행하였다.
4월 9일 새벽 성을 포위하고 있던 적이 서기환이 담당한 동문(東門)을 폭약으로 파괴하고 성내로 밀려들어오자 적을 맞아 접전하던 중 전사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