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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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경아전(京衙前)의 하급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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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경아전(京衙前)의 하급 서리.
내용

상급 서리인 녹사(錄事)와 함께 주로 서책(書冊)의 보관, 도필(刀筆)의 임무 등을 맡았던 경아전에 속하는 하급 서리였다.

본래의 소속은 의정부와 중추부였으나 동반의 각 관사에는 의정부가, 서반의 각 관사에는 중추부가 이들을 나누어 배속시켰으므로 근무하는 관아는 다양하였다.

사만(仕滿 : 임기만료)은 2,600일로서 상급 서리인 녹사의 514일보다 훨씬 길었다. 거관(去官 : 다른 관직으로 옮김.)하는 한품(限品)도 당상아문의 서리는 종7품이었고 3품이하 아문의 서리는 종8품으로 녹사의 종6품보다 낮았다.

한편, 서리에서 사만되어 거관한 자는 역승(驛丞)·도승(渡丞) 취재(取才)를 거쳐 서용될 수 있었는데, 서용되기 전에는 그 관사에서 계속 근무하되 직책은 그대로 있고 품계만을 올려 받을 수 있었다. 만일, 다른 관사에 소속될 때는 먼저 근무한 일수를 그 근무일수에 합산하여주었다.

그러나 1년에 거관할 수 있는 숫자는 양도목(兩都目)으로 나누어 각기 100인을 넘을 수 없었다. 이는 녹사의 연 거관인 수 20인에 비해 많은 숫자이나 전체 서리 숫자에 비하면 많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사만기일의 계산에서 승정원의 서리는 50%, 즉 매 2일에 1일을 추가 계산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사만이 되면 도목을 계산하지 않고 거관하도록 되어 있었다. 홍문관의 책색서리(冊色書吏)는 사만기일의 계산에서 33%, 즉 매 3일에 1일을 추가해서 계산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이러한 서리는 녹사와 함께 사환(仕宦)하는 도중 유고(有故)로는 연간 만 100일, 무고로는 만 30일을 근무하지 않으면 관직을 빼앗기고 파직되었으며, 29일 이하를 근무하지 않으면 수속환사(收贖還仕 : 속전을 내고 다시 관직 생활을 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喪)을 당한 경우는 상을 마친 뒤에 다시 근무할 수 있으되 상전에 근무한 일수를 함께 계산해주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만기일이 너무 길고 거관 인원도 매 도목마다 100인이나 되었으므로 과궐(窠闕 : 정원의 빈자리)이 많아 각관교생(各官校生) 중에서 세공(歲貢)으로 충원시키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숙종실록(肅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초기양반연구』(이성무, 일조각,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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