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민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장악원주부, 증산현령, 호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덕중(德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1781년(정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악원주부|증산현령|호조정랑
  • 출생 연도1733년(영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조 (경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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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장악원주부, 증산현령, 호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덕중(德仲).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서문유(徐文裕)이고, 아버지는 황주목사 서종벽(徐宗璧)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9년(영조 35)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 1762년 의금부도사·사옹원봉사를 거쳐, 1763년 직장(直長)이 되어 분원(分院)을 관장하였는데, 이때 원민(院民)들의 부역을 덜어주었다. 이듬해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를 거쳐, 1765년 증산현령(甑山縣令)으로 나가 백성들에게 예를 가르치고 학교를 정비하였다.

1768년 한산군수(韓山郡守)로 옮겨 토호를 억누르고 빈민을 구제하였다. 1770년 의성현령, 그 이듬해 호조정랑을 거쳐, 1772년 재령군수로 나가 의옥(疑獄: 지방민들의 분쟁이나 사건)을 잘 처결하여 지방관의 모범이 되었다. 1776년 서흥부사로 승진하였고, 이듬해 황주목사로 옮겼고, 1778년 평양서윤으로 나갔다가 1781년 의빈부도사로 임명되었다가 병으로 죽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지방관으로서 행정능력이 뛰어나 사무처리에 막힘이 없었으며, 청렴결백하였다. 문장을 잘 하여 사리(辭理: 말의 조리)가 섬창(贍暢: 통달하면서도 넉넉함)하였다.

경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논어(論語)』에 정통하여 주석을 남기기도 하였다. 당시 민간에서 많이 유행하던 소설을 심술(心術)을 해친다 하여 읽지 않았다. 무덤은 장단의 금릉리에 있는데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묘갈명이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이계전서(耳溪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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