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악원주부, 증산현령, 호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8년 한산군수(韓山郡守)로 옮겨 토호를 억누르고 빈민을 구제하였다. 1770년 의성현령, 그 이듬해 호조정랑을 거쳐, 1772년 재령군수로 나가 의옥(疑獄: 지방민들의 분쟁이나 사건)을 잘 처결하여 지방관의 모범이 되었다. 1776년 서흥부사로 승진하였고, 이듬해 황주목사로 옮겼고, 1778년 평양서윤으로 나갔다가 1781년 의빈부도사로 임명되었다가 병으로 죽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지방관으로서 행정능력이 뛰어나 사무처리에 막힘이 없었으며, 청렴결백하였다. 문장을 잘 하여 사리(辭理: 말의 조리)가 섬창(贍暢: 통달하면서도 넉넉함)하였다.
경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논어(論語)』에 정통하여 주석을 남기기도 하였다. 당시 민간에서 많이 유행하던 소설을 심술(心術)을 해친다 하여 읽지 않았다. 무덤은 장단의 금릉리에 있는데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묘갈명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이계전서(耳溪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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