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60~1970년대, 통일벼를 개발하여 현대 한국의 쌀 자급에 기여한 농학자.
인적 사항
주요 활동
한국의 고질적 식량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수확 벼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허문회는, 국제미작연구소의 설립 소식을 접하고 현지 연수를 신청하여 1964년부터 서울대학교를 휴직하고 국제미작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국제미작연구소의 벼 육종 책임자 헨리 비첼(Henry M. Beachell)의 신뢰를 받으며 연구진에 합류하였고, “기적의 벼”라는 찬사를 받은 단간다수확 벼 품종 IR8(1966)의 개발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한국 환경에 맞는 단간다수확 벼 품종을 개발하겠다는 목표 아래 국제미작연구소에서 취급하던 아열대 품종과 한국에서 잘 자라는 온대 품종을 교잡하여 500여 종의 조합을 실험하였다.
1966년 서울대학교로 복직한 허문회는 국제미작연구소에서 실험하였던 품종 표본을 가져와 한국 적응 실험을 계속하였다. 특히 IR8과 같은 인디카계 품종과 한국에서 잘 자라는 자포니카계 품종을 교잡하면 생산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전적 거리가 먼 제3의 종을 다시 교잡하는 ‘원연종 간 삼원교잡’과 같은 기술을 시도하였다. 삼원교잡의 결과로 얻은 품종 가운데 IR8 x (Yukara x TN1) 조합을 IR667로 명명하고, 이것이 한국 기후에 잘 적응하며 다수확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허문회는 IR667의 실용화를 위해 1968년 새로 농촌진흥청장에 취임한 김인환을 설득하였다. 김인환은 국제미작연구소의 지원 약속을 받고 IR667의 실용화를 결정하였고, 농촌진흥청은 1971년 이를 ‘통일’이라 명명하고 농가에 장려 품종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통일벼는 박정희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급속히 농가에 보급되었고, 당시 추진 중이던 새마을운동과도 맞물려 쌀 증산을 통한 농가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결과 1977년 한국은 쌀 자급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허문회는 IR667의 실용화 이후에도 단간다수확 벼 품종의 지속적인 개량을 위해 연구를 계속하였다. 이를 통해 여러 품종을 실용화했을 뿐만 아니라, 단간 유전자와 찰기 유전자 등 실용적 가치가 높은 유전자들의 염색체상 위치를 밝혀내는 등 유전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허문회는 통일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네팔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농업 기술 개발을 위한 자문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작물학회장, 한국육종학회장, 중국연변농학원 초청교수, 아시아‧오세아니아 육종학회 및 국제 벼유전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논문
- 최현옥·배성호·정근식·조재연·허문회·Henry M. Beachell, 「수도 단간수중형품종 신품종 ‘통일’」(『농사시험연구보고』, 1974)
- 허문회, 「수도원연품종간잡종에 있어서의 생육일수와 불임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68)
인터넷 자료
- 「쌀 자급을 이룩한 통일벼의 아버지」,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https://www.koreascientist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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