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때, 황산벌 싸움에서 활약한 신라의 화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관창은 곧 적진에 뛰어들어 가 싸웠으나 적에게 사로잡혔는데, 계백은 관창의 어리고 용맹함에 탄복해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적장을 죽이고 적기(敵旗)를 빼앗아 오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긴 관창은 다시 적진으로 돌진해 싸우다가 또다시 적군에게 사로잡혔다. 계백은 이번에는 목을 베어 말 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냈다. 용감한 죽음에 자극된 신라군은 분연히 진격해 계백을 죽이고 백제군을 대파함으로써 백제를 평정할 수 있었다. 태종 무열왕은 그 전공을 높이 기려 급찬(級飡)을 추증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 주었다.
고려 말기에 경주 지방에서 황창(黃昌)의 가면검무(假面劍舞)가 공연되었는데, 이것을 관창의 용맹과 충절을 숭상하기 위해 만든 검무와 연결시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나이 어린 소년이 적진에 홀로 뛰어들어 가 전사하게 한 것은 후세에 교훈이 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오늘날까지 충효 정신과 화랑 정신이 투철한 인물로 귀감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관창-황토벌에 진 화랑-」(정원옥, 『역대인물한국사』 1, 신화출판사, 1979)
- 「고대의 백희잡기와 무악」(전덕재, 『한국고대사연구』65, 2012)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