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사찬(沙湌)에 이르렀다. 쇠뇌를 만들어 쏘면 1,000보(千步) 밖의 것을 맞힐 수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당나라의 고종은 669년(문무왕 9)겨울에 사신을 보내어 구진천을 데려다가 그 만드는 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신라와 동맹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한반도를 온통 지배하려는 야심을 나타내었다. 이에 대하여 신라는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한 고구려부흥운동을 돕거나 백제점령지의 당나라 군사들을 몰아내는 등 당나라의 침략의도에 맞서 항거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나라는 신라가 가지고 있는 유력한 무기인 목노(木弩)에 주목하게 되어 그 제작자인 구진천을 데려갔다. 그러나 구진천은 여러가지를 빙자하여 그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당나라의 고종이 무거운 죄를 지우겠다고 위협하였으나, 끝내 그 비법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