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왕

  • 역사
  • 인물
  • 삼국
가야의 제7대(재위: 421년~451년) 왕.
이칭
  • 이칭가보왕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동하 (동덕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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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가야의 제7대(재위: 421년~451년) 왕.

개설

금관가야(金官加耶)에 관한 기록인 <가락국기 駕洛國記>에는 가실왕의 이름이 보이지 않으므로 금관가야를 제외한 다른 가야국의 왕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대가야(大加耶)의 왕이라는 견해, 또는 아라가야(阿羅加耶)의 왕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는 가실왕은 곧 금관가야의 취희왕(吹希王)이라는 견해도 있다. 당나라의 악기 쟁(箏)을 보고 열두달의 악률(樂律)을 형상하는 십이현금(十二弦琴), 곧 가야금(加耶琴)을 만들었다. 또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므로 성음(聲音) 또한 일정하게 할 수 없다고 하여 악사(樂師)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십이곡을 만들게 하였다.

이때 우륵이 지은 열두곡은 <하가라도 下加羅都> · <상가라도 上加羅都> · <보기 寶伎> · <달이 達已> · <사물 思物> · <물혜 勿慧> · <하기물 下奇物> · <사자기 師子伎> · <거열 居烈> · <사팔혜 沙八兮> · <이혁 爾혁> · <상기물 上奇物> 등이었다.

가야가 망하게 되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하였는데, 신라의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 : 지금의 忠州)에 두고 가야의 음악을 계승케 하였다. 우륵과의 관계를 보면 가실왕은 신라 진흥왕과 같은 시기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

  • - 『삼국유사』

  • - 「상·하가라의 시조설화(上·下加羅의 始祖說話)」(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 - 「우륵십이곡의 해석문제」(백승충, 『한국고대사논총』 3, 1992)

  • - 「金官國の世系と卒支公」(村上四男, 『朝鮮學報』 21·22合輯, 1961)

  • - 「加羅諸國の史的發展について」(鬼頭淸明, 『朝鮮史硏究會論文集』 11,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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