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는 미상이며, 법명은 도옥(道玉)이다. 경주 사량부(沙梁部) 사람으로, 나마(奈麻) 취복(聚福)의 둘째 아들이다. 일찍이 승려가 되어 실제사(實際寺)에 머무르고 있었다.
무열왕 때 백제군이 신라와 백제 양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조천성(助川城 :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陽山)을 침공하여오매 무열왕이 군사를 일으켜 대전하였으나 결말을 보지 못한 상황에 있을 때, 승복을 벗고 출전하였다.
출전하면서 법명을 버리고 ‘취도’라고 이름을 고쳤는데, 이는 ‘달려가 무리[徒]가 된다.’는 뜻에서였다. 삼천당(三千幢)에 소속되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그의 형 부과(夫果)와 동생 핍실(逼實)도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었으므로, 이들의 용맹에 탄복한 신문왕에 의하여 모두 사찬(沙飡)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