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의 제22대 지증왕의 증손으로, 이찬에 임명되었으며, 병부령 등을 역임한 종실.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세 아들에게 신하 된 몸으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죽더라도 반드시 왕을 깨우쳐 주리라 하고는 시체를 왕이 사냥 다니는 길가에 묻을 것을 유언해, 그 아들들이 그대로 하였다. 어느 날 왕이 사냥 나갈 때 길가에서 “가지 마시오.”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시종에게 물으니, 시종이 김후직의 묘에서 나는 소리라 하고 그가 임종할 때 한 말을 전하자 왕이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사냥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김후직이 진평왕에게 간한 내용은 후대인들에게 신하 된 사람의 충간(忠諫)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또한 죽은 뒤 무덤 속에서까지 왕에게 했던 그의 충간을 사람들은 ‘묘간(墓諫)’이라 부르며 칭송하였다. 경주역에서 포항으로 가는 국도 옆에 그의 묘로 알려진 분묘가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신라병부령고(新羅兵部令考)」(신형식, 『역사학보』 61, 1974)
-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예속(禮俗)과 유교사상(儒敎思想)」(김철준, 『한국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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