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신앙은 늦어도 당대(唐代)에는 중국 재래의 시왕사상과 결합되어 지장시왕신앙으로 확대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시왕경도권(十王經圖卷)과 지장시왕도 등이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널리 유포되었다. 지장시왕도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행한 도상이나, 지장과 시왕을 각각 그린 다폭 형식은 조선 후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시왕경』에 의하면, 죽은 중생들은 죽은 날로부터 49일 되는 날까지 7일 간격으로 7번, 그리고 100일, 1년, 3년째 되는 날에 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 그림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도상화한 것이다. 10폭 그림 각각의 왼쪽 구석에 시왕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옥천사 「시왕도」는 1744년에 화승 효안(曉岸), 최현(最賢), 상오(尙悟), 포근(抱勤), 증순(證淳), 지심(智心), 증한(證閑), 지성(至誠), 능학(能學), 덕희(德熙), 덕잠(德岑), 환기(幻機), 일한(日閑) 등 13명이 「지장보살도」와 함께 제작하였다. 1976년 「시왕도」 10폭 중 제1·2대왕도 2폭을 도난당했으나, 2016년 제2초강대왕도(第二初江大王圖)가 프랑스에서 국내로 환수되었다. 그에 따라 현재는 원 봉안처인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에 9폭이 현전한다. 2010년 「지장보살도」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고, 2017년에는 환수된 제2초강대왕도가 추가로 지정되었다.
폭마다 상단에는 1위(位)의 시왕과 권속들을, 하단에는 지옥 장면을 배치하였다. 공통적으로 상단에는 시왕을 중심으로 8~9명의 권속이 좌우에 시립하고, 시왕의 뒤로는 용머리 장식이 있는 등받이가, 앞에는 책상이 놓여있다. 하단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옥천사 「시왕도」의 가장 큰 특징은 시왕의 뒤에 표현된 큰 등받이와 구름으로 상단의 재판 장면과 하단의 지옥 장면을 분할한 점이다. 이러한 형식은 범어사 「시왕도」[1742]가 가장 이른 사례로 알려져 있었으나, 범어사본이 화재로 소실됨에 따라 이 작품이 현전 최고작(最古作)이 되었다. 그 외 이 형식에 속하는 작품으로 수다사 「시왕도」[1771], 18세기에 제작된 국립중앙박물관본과 홍익대학교박물관본, 화방사 「시왕도」 등이 있다.
수화사인 효안은 18세기 전반에 직지사 권역에서 활동하다가 1744년에는 옥천사의 대규모 불화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 그림을 제작한 화승 집단은 같은 해 옥천사 대법당 「영산회상도」와 「삼장보살도」 조성에도 동참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도상의 안정적인 구도와 안면 묘사에 보이는 섬세한 필치가 돋보인다. 또한 18~19세기 영남 지역 시왕도에서 이 그림의 지옥 장면과 동일한 계통의 도상들이 적지 않게 확인된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시왕도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