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는 1970년대 주곡의 자급을 달성하게 한 신품종 벼이다. 196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교수 허문회가 다수확 품종 IR667을 개발하였다. 1970년에 가장 유망한 세 개의 계통이 장려품종으로 선발되어 통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키는 작으나 광합성 효율이 높아 수확량이 많다.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보급되었다. 매년 통일계 신품종의 재배 면적이 늘어감에 따라 쌀의 생산량이 많아졌다. 1976년 신품종 재배 면적은 44%로 확대되었다. 통일벼의 보급으로 1977년 쌀의 완전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농촌진흥청 주도로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 파견된 서울대학교 교수 허문회가 다수확 품종 IR667을 개발하였다. 허문회가 개발한 신품종은 한국인이 먹는 자포니카(Japonica)와 다수확 품종인 인디카(Indica)를 교배한 것이었으며, 국제미작연구소의 667번째 개발품종이라는 의미로 IR667이라 불렸다.
IR667은 시험재배를 통해 다수확성이 확인되면서, ‘기적의 쌀’로 주목을 받았다. 신품종의 보급을 위해 우수한 생산력을 보인 여러 계통이 확보되었고, 1970년에 가장 유망한 세 개의 계통이 장려품종으로 선발되어 통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통일은 시험재배를 거쳐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 보급되었다. 정부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여 신품종 재배를 촉진시켰다. 연구자들은 통일벼가 지닌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후속품종 개발을 추진했는데, 밥맛을 개선한 ‘유신’이 대표적이었다.
통일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신품종은 전국적으로 재배되면서 쌀 수확량을 높였으며, 이에 힘입어 1977년에 쌀의 완전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통일벼는 재래 품종에 비해 내랭성이 낮기 때문에 보온못자리가 필요했고, 충분한 양의 비료와 물이 공급되어야 했다. 줄기의 키가 작기 때문에 볏짚이 짧아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통일벼는 키는 작으나 광합성 효율이 높아 수확량이 많은 단간다수성(短稈多收性)의 특징을 지닌다. 열대 · 아열대에서 재배되는 인디카는 자포니카에 비해 낱알의 모양이 길쭉하고 끈기가 적다.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교배품종인 통일벼는 형태적으로 중간적 형질을 지니고 있으며, 밥맛도 다소 푸석푸석하고 밋밋한 편이다.
인디카는 높은 수확량에도 불구하고 내랭성이 높지 않아 한국의 기후에는 맞지 않았는데, 허문회는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원연교잡(remote cross)으로 문제를 풀었다. 원연교잡은 거리가 먼 종끼리 교잡하는 것으로 불임인 경우가 많았다.
허문회는 다양한 교배조합을 통해 잡종불임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고, 수대에 걸쳐 자가교배를 실시하는 한편 이 품종을 제3의 품종과 교배하는 매개교잡(bridge cross)을 통해 불임을 해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내랭성이 좋은 인디카 TN1과 자포니카 중 추위에 강하고 수확시기도 빠른 유카라(Yukara)를 원연교잡하고, 여기에 생산성이 높은 IR8(인디카 품종)을 매개교잡하는 방식으로 IR667을 개발했다.
1977년에 통일벼로 쌀의 자급을 이루게 됨에 따라 그동안 대표적인 절미정책이었던 무미일(無米日)이 폐지되었으며, 여러 쌀 수요 억제책들도 완화되었다. 특히 쌀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 만인 1977년 12월에 쌀막걸리 제조를 허가했는데, 쌀막걸리의 등장은 그 해 10대 뉴스에 포함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매년 통일계 신품종의 재배 면적이 늘어감에 따라 쌀의 생산량도 높아졌으며, 1976년에 신품종 재배 면적은 전체의 44%로 확대되었다. 1977년에는 600.5만 톤의 쌀을 생산했으며, 전국 평균 수확량은 10a 당 494㎏으로, 일본(1975)의 종전 세계 최고기록(447㎏/10a)을 넘었고, 쌀의 자급률은 113%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쌀의 수입을 중단하고, 주곡의 자립과 녹색혁명의 성취를 공식 발표했다.
비록 1978년부터 병충해, 냉해 등으로 통일계 신품종이 큰 타격을 받고 수확량이 크게 떨어졌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통일벼의 개발과 보급에서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자포니카 품종에 대한 개량 연구가 계속되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주곡인 쌀의 실질적인 자급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