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원예(元藝), 호는 규정(圭庭). 도승지(都承旨) 서미수(徐美修)의 손자로, 공조판서 서유여(徐有畲)의 아들이다.
1856년(철종 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다음 해 충청우도암행어사로 임명되고, 1858년 승지를 지냈다. 1864년(고종 1) 이조참의, 1870년 예조참판, 1872년 예문관제학에 이어 1874년 홍문관제학을 거쳐 이듬해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76년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형조판서에 이르는 등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