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씨라는 신령을 중심으로 모시는 무(巫)계통의 신당이다. 행당동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아기씨당이 있는데, 하나는 배명학교의 뒤편 언덕 쪽에 있는 ‘수풀당’이고, 다른 하나는 한양대학교에 못 미처 철로 근방에 있는 ‘살근당’이다.
‘수풀당’은 무가(巫歌) 〈가망청배〉의 앞부분에 올려지는 이름 있는 굿당으로 아기씨 형제를 주신령으로 모신다. 무당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왕조 때 국난을 만난 두 공주가 그곳으로 피난을 나왔다가 혼인을 못한 채 죽었다. 그 뒤 민가에 여러 액운이 겹치자 주민들이 이 신당을 세워 그들을 모시자 액운이 가셨다. 특히, 혼인문제로 치성을 드리면 큰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당은 서너 평의 기와건물이고, 당 내부에는 두 아기씨를 함께 묘사한 무신도(巫神圖)를 비롯하여 장군·신장·별성 등의 신령화본이 모셔져 있다. ‘살근당’은 원래 지금의 성동경찰서 앞쪽에 있었다. 당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의 현판에 의하면, 18세기 중엽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이 퇴락한 채로 방치되었다가 광복 직후 그 당굿을 주재하던 ‘족집게무당’이라는 별호를 가진 무당의 꿈에 아기씨가 현몽하여 자리를 옮겨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을 유지들도 당의 퇴락을 송구스럽게 여겨 돈을 모아 1947년 성동구 행당 1동의 현 위치에 새로 신당을 세웠다.
6·25전쟁 때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그 뒤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가졌다. 당은 30평 정도의 대지 위에 10평 남짓한 제당건물로서 마루 위에 제단을 마련하고, 정면 벽 한가운데에 아기씨, 그리고 좌우로 장군·별성·불사·신장 등의 신령이 무신도의 형태로 모셔져 있다. 당의 한쪽 벽에는 당건물의 내력을 밝힌 현판이 한자로 쓰여 걸려 있다.
족집게무당은 조선시대 말 궁(宮)의 나인이었는데 아기씨에 씌여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며느리가 내리 3대째 이 당의 당굿을 주재하여 오고 있다. 당의 주된 의례인 당굿은 동민들이 비용을 추렴하여 매년 가을에 벌인다. 그것을 ‘아기씨당 고사 잡숫는다.’라고 표현한다.
이전에는 밤을 새워 놀았으나 요즈음은 낮에 거행된다. 목적은 행당1동이 일년 내내 평안하고 질병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 굿의 네 번째 거리인 아기씨굿에서는 아기씨의 공수가 있어 주민들은 그것에 최대의 관심을 쏟는다.
그러한 당굿은 농경과는 관계없으나 농촌의 마을굿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당굿 이외 무당들은 그들의 단골을 데리고 와 소규모의 치성을 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