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인종, 현종때의 학자인 석계이시명(李時明)과 정부인(貞夫人)이 살던 집이다.
이시명은 영덕(盈德)군 창수(蒼水)면에서 출생. 벼슬길에 뜻을 두지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인조 18년(1640)에 영양의 석보로 들어가 석계 위에 집을 짓고 석계로 호를 하고 안빈낙도 하였다. 정부인 장씨도 효행, 부덕, 학문과 예술이 뛰어나 신사임당에 버금가는 인물로 추앙되었다. 후에 석계선생은 임종을 안동에서 하였으나 정부인은 이 집에서 별세하였다.
현재 삼문을 새로 조성해서 담장과 함께 픗냄새 짙지만 고택은 창연한 풍취가 짙다. 남향한 중문간채 동편에 사랑채를 꾸몄다. 방 두칸만 나란하고 앞퇴 없이 쪽마루만 있는데 윗방은 벽체가 판벽이다. 도끼별집 기법을 보인다. 중문, 그 왼편이 마굿간, 다음이 곳간이다.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중문안에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긴 안마당이 있고, 안채가 자리잡았다. 안채도 홑집이며 앞퇴가 없다. 산곡간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집들이 이런 유형인데 구조된 기법에서도 고졸(古拙)한 기풍이 느껴진다.
ㅡ자형 서쪽끝간이 부엌. 다음이 안방. 두칸의 대청과 건넌방인데 방은 단칸이나 안방의 간살이는 영조척으로 10척(약3,085)에 가깝도록 넓게 잡았고 대청도 9.5척으로 설정하였다. 대청 한칸 뒷벽에 내고(內庫)와 같은 시설이 있다. 이 집의 특색이다. 안방에 코쿨의 흔적을 남긴것도 주목된다. 홑처마 맞배지붕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