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집. 198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지(寺誌) 등이 없어 분명하지 않지만 암막새에 새겨진 명문에 ‘雍正三年己巳三月日造成(옹정3년기사3월일조성)’이라고 되어 있어 1725년(영조 1)에 해당되는 시기를 알 수 있으며 구조의 기법으로 보아 법당의 중건연대와 합치한다고 할 수 있다.
대웅전은 영산전(靈山殿)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높게 쌓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고대(高臺) 위, 산 중턱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하여 자리잡았다. 자연석의 주초석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웠는데 높이가 영조척(營造尺)의 8자(약 2.5m) 정도이다.
귀기둥은 굵고 약간의 솟음이 있으며, 굵은 기둥은 원목에 가깝게 다듬어서 매우 천연적이다. 창방(昌枋) 위로 평방(坪枋)을 얹었는데 창방 높이 8치에 비하여 6치밖에 안 되는 나약한 것이고 그것도 두 가닥 재목을 맞이은 부재여서 매우 취약하다.
공포(栱包)는 다포계에 속하며 주간(柱間)에 두 개의 공포를 더 배치하였다. 맞배집이어서 측면으로는 공포구조가 계속되지 않으므로 귀기둥 위에서 마감시키느라 애를 썼는데 앞쪽의 처리와 뒤쪽의 정리에 차이가 있다. 이는 행공첨차를 토막처럼 만든 기법과 더불어 고려 말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
문은 보편적이나 사분합 문짝은 1985년도에 새로 설치하였다. 하방(下枋)은 주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높이에 걸렸으며, 하방에 의지하고 귀를 걸어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는데 매우 어색하다. 이는 원래 맨 바닥으로 방전(方塼)을 깔았던 구조임을 암시하고 있다.
내부의 가구(架構)는 새로 구조한 빗천장으로 가려져서 다 볼 수 없게 되었으나 대들보에 동자주를 세워서 하중보를 받치고 그 위에 다시 종보를 얹어 판대공을 받치고 종도리를 얹게 된 것으로 보아 9량집[九樑架]으로 보인다.
새로 고친 불단 위에 본존상이 있고 머리 위에 닫집이 조성되어 있는데 중층의 보궁형으로 꾸민, 매우 드문 유형이다. 단청은 1985년에 새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