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궁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육상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실의 사당. 왕실사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계옥 (문화재연구소,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서울 선희궁터 전경 미디어 정보

서울 선희궁터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육상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실의 사당. 왕실사묘.

내용

1764년(영조 40)에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신주를 봉안한 묘사(廟祠)이다.

왕실의 사묘란 조선 시대 정실왕비(正室王妃)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임금이 그의 어머니의 신위(神位)를 모신 곳이다. 1764년에 영빈이씨가 사망하자 시호를 의열(義烈)이라 추증하고, 묘의 이름을 의열묘(義烈廟)라고 하였다가 1788년(정조 12)에 선희궁으로 고쳐 격을 높였다.

원래는 한성의 북부 순화방(順化坊 : 현재 종로구 신교동 부근)에 있었는데, 1870년(고종 7)에 신주를 육상궁으로 옮겨 모셨다가 1896년 선희궁으로 되돌려 모셨고, 1908년에 다시 육상궁에 옮겨 모셨으며, 그 옛 터에는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다.

전하는 바로는 영친왕이 태중(胎中)에 있을 때 순헌엄귀비(淳獻嚴貴妃)의 꿈에 영빈이씨가 나타나서 폐(廢)한 사당을 다시 지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였는데 그뒤 영친왕을 낳고 나서 꿈을 꾸었던 일을 고종에게 말하여 제자리에 사당을 새로 지어서 다시 신주를 받들었다고 하나, 1908년에 신주를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 받들었다.

참고문헌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서울문화재대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