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서편에 있었던 조선시대 겹처마 우진각지붕 형태의 문(門).
내용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모든 칸이 개방되어 있다. 공포(拱包)는 2익공으로 우진각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각 지붕에는 양성이 되고 취두(鷲頭)ㆍ용두(龍頭)ㆍ잡상(雜像)이 얹혀져 있고, 사래끝에는 토수(吐首 : 전각 네 귀의 추녀 끝에 끼는 용머리형이나 귀신머리형태의 장식)를 끼웠다.
축대 주변에는 여장(女墻 : 여러 사람이 담을 두르듯이 서 있는 모양)을 둘러 외호시설(外護施設)을 하였고 건물 옆면에 또 작은 홍예문을 내어 여장과 연결시키고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1926년 일본인들이 경복궁의 전각(殿閣)들을 헐어낼 때 헐려 그 서쪽에 작은 문만을 내었는데 1975년에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광화문처럼 번다한 장식이 없이 소박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는데, 동쪽문인 건춘문(建春門)도 같은 규모와 형태를 하고 있다.
1975년 지금 모습으로 복원된 뒤 청와대 외곽 경호를 맡은 수경사 30경비단이 주둔하며 통재되었다. 2018년 통제 43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
- 『朝鮮古蹟圖譜』10(朝鮮總督府, 1915)
- 『서울육백년사(六百年史)』(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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