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후기 광해군의 세자빈 간택 관련 주택. 잠저(潛邸)·별궁.
내용
그 뒤 1623년(인조 1)에 원종(元宗 : 인조의 아버지)의 비인 연주부부인 구씨[連珠府夫人具氏 : 뒤에 仁獻王后로 추존]의 거소로 하면서 궁호를 계운궁(啓運宮)으로 고쳤다. 이어 병자호란 뒤에는 난으로 집이 없어진 인조의 아우인 능원대군(綾原大君)의 거처로 삼았다. 1631년(인조 9)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가례가 이곳에서 행하여졌다.
이 후 숙종 때에는 숙빈방(淑嬪房)으로 삼았다가 1711년(숙종 37)에는 연잉군[延礽君 : 뒤의 영조]의 잠저를 이 곳에 두기도 하였다. 정조 때에 이 궁을 폐지하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하였고, 순조 때는 장용영의 폐지와 함께 훈국(訓局)·동별궁(東別宮)·선혜청(宣惠廳)·동창(東倉) 등이 설치되었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국조보감(國朝寶鑑)』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 1987)
- 『한경지략』(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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