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동

  • 경제·산업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대한방직주식회사 사장, 대동제당 사장 등을 역임한 기업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3년(고종 40)
  • 출생지평안북도 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황명수 (단국대학교, 경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대한방직주식회사 사장, 대동제당 사장 등을 역임한 기업인.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철산 출생. 대한전선그룹을 창업하였다. 15세 때부터 신의주에서 곡물도매상을 시작하였다. 신의주에서 5년간 거주한 뒤 함경북도 청진으로 옮겨 일본인과 합자하여 함북약유주식회사(咸北鰯油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전무가 되었으며, 1936년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이 되었다.

이 회사는 1945년까지 어선 70척으로 늘어났고 관련 수산단체에 관여해 활동하였다. 8·15광복 후, 맨몸으로 월남하여 무역을 주도하는 대한선업을 설립하였다.

무역을 하는 한편 적산가옥·토지를 불하받아 팔기도 하다가 원동흥업(遠東興業)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부동산투자를 하였다. 이 회사들이 번창해가자 수원의 성냥공장을 인수하여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성냥업계를 석권하였다.

6·25전쟁으로 전재산을 불태웠으나,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하여 대한방직주식회사를 설립, 사장이 되었다.

당시 방직업은 정책적인 보호를 받고 있어 번창할 수 있었고 정계에도 진출하여 자유당 재정부장이 되었다. 1954년에는 대한전선을 불하받았으며, 1956년에는 대동제당(大東製糖)을 설립하였다.

이후 4·19혁명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으로 타격을 받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정부의 기간산업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대한전선의 시설확충에 전력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텔레비전·냉장고 등 전자제품 생산과 이의 호경기에 힘입어 그의 기업체군은 대한재벌로 불리게 되었다. 고희에 접어들면서 설원식(薛元植)을 비롯한 2세들에게 사업기반을 물려 주고 2선으로 은퇴하였다.

그는 북한에서 월남한 실향기업인으로 5·16군사정변 이전까지에 우리나라 10대 재벌에 올라간 자수성가형의 기업가였다.

참고문헌

  • - 『세계대기업가전집』16(이경남, 문우사, 1973)

  • - 『사장100인 좌우명』(한국생산성본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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