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책(29장), 규모는 가로 32㎝×세로 34.5㎝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지명되어 청나라에 잡혀간 김상헌이 심양(瀋陽)에서 옥고 6년 동안 첫 번째로 펴낸 친필시 중, 함께 옥고중인 조한영(曺漢英, 1608∼1670)과 수창한 시이다. '설교(雪窖)'란 눈 쌓인 움막이라는 뜻으로 타국에 억류되어 고생한 것을 의미한다.
모두 43종으로 5언과 7언으로 된 절구와 율시가 주로 조한영에게 보낸 것이다. 심양 8경을 시작으로 대부분 옥중생활의 심회를 밝힌 내용이다.
김상헌의 나이 72세(조한영 35세) 때의 시로 당시 『설교수창집(雪窖酬唱集)』의 제목으로 조한영이 지은 시와 함께 김상헌의 서문을 받은 뒤에 펴냈다. 여기에는 일차로 펴낸 『설교집』 289수 가운데 조한영에게 보낸 시 43종과 뒤에 다른 인물의 글씨로 된 몇 편이 첨부되었다.
김상헌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자는 숙도(叔度)이고, 호는 청음(淸陰) · 석실산인(石室山人)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오르고, 청백리(淸白吏)에도 뽑혔다. 이 시문에는 서간노인(西磵老人) · 풍산노인(豊山老人)의 호를 썼고, 다만 동궁(東宮)의 사주(賜酒) 때에 지은 시에만 김상헌이라 하였다.
김상헌의 옥중 시(71세∼77세)는 이 외에 『설교후집(雪窖後集)』 102수와 『설교별집』 118수가 『청음집』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첫 번째 『설교집』 43종 중에는 『청음집』에 들어 있지 않은 시가 10여 종이고, 더러는 문집과 다른 구절도 발견되어 『설교집』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청음집』은 40권 14책으로 이미 간행된 것을 1977년 조용승(曺龍承)이 유집(遺集) 9권 필고(筆稿)를 보완해 영인본의 『청음전집』을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