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귀장군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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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
개념
중국 당나라 초기 설인귀장군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장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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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당나라 초기 설인귀장군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장군신.
내용

설인귀는 원래 중국 강주(絳州)용문(龍門) 태생으로 당나라 고종(高宗) 때의 장군이다. 그는 고구려가 망한 뒤 평양에 설치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도호로 부임하였다가,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중국에서 죽었다.

이러한 중국 장군이 어떻게 한국무의 신령으로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사묘조(積城縣祠廟條)에 이르기를, “감악사는 민간에서 전하는바,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그곳 산신으로 삼았다(紺岳祠諺傳 新羅以唐薛仁貴爲山神).” 한다.

산신은 그 지역의 평안을 지켜 주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데, 설인귀의 위용이 높이 숭배되어 감악사의 산신이 된 듯하다.

조선조는 일찍부터 한양 경계의 명산대천에 작위를 내리고 봄·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그곳 신령들을 제사지냈다. 그 중 감악사 산신과 개성 덕물산(德物山) 최영사당은 특히 영험이 크다 하여 한말에 이르기까지 궁에서 사람을 보내 기도를 올렸으며, 무당의 치성과 굿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이능화, 『계명』제19호, 계명구락부, 1927)
「한말(韓末)의 궁중무속(宮中巫俗)」(최길성, 『한국민속학』제3호,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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