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귀는 원래 중국 강주(絳州)용문(龍門) 태생으로 당나라 고종(高宗) 때의 장군이다. 그는 고구려가 망한 뒤 평양에 설치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도호로 부임하였다가,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중국에서 죽었다.
이러한 중국 장군이 어떻게 한국무의 신령으로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사묘조(積城縣祠廟條)에 이르기를, “감악사는 민간에서 전하는바,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그곳 산신으로 삼았다(紺岳祠諺傳 新羅以唐薛仁貴爲山神).” 한다.
산신은 그 지역의 평안을 지켜 주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데, 설인귀의 위용이 높이 숭배되어 감악사의 산신이 된 듯하다.
조선조는 일찍부터 한양 경계의 명산대천에 작위를 내리고 봄·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그곳 신령들을 제사지냈다. 그 중 감악사 산신과 개성 덕물산(德物山) 최영사당은 특히 영험이 크다 하여 한말에 이르기까지 궁에서 사람을 보내 기도를 올렸으며, 무당의 치성과 굿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