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은 원나라에서 돌아와 주자학을 연구하던 중 국학이 날로 쇠퇴해감을 걱정하고, 1304년(충렬왕 30) 조정에 건의하여 유학의 진흥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문무관리 6품 이상은 은(銀) 1근씩, 7품 이하는 포(布)를 내게 하였다.
이를 섬학전이라 하는데 기금을 양현고(養賢庫)에 귀속시켜 섬학고(贍學庫)라 하고 그 이식으로써 학교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채택하였고, 왕은 내탕(內帑)의 전곡(錢穀)을 내어 이것을 도왔다.
한편, 안향은 그 갹출의 일부 자금으로 김문정(金文鼎) 등을 원나라에 보내 공자와 그의 제자 70자(子)의 상을 그려오게 하고, 여러 서적과 제기·악기 등을 구하여 오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