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

간명교육학 / 유옥겸
간명교육학 / 유옥겸
개념
교육행위와 교육현상에 관한 제반 영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이론체계로 종합한 학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교육행위와 교육현상에 관한 제반 영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이론체계로 종합한 학문.
개설

교육은 그 자체가 지식·기술·규범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탐구과정을 뜻하지만,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교육행위와 현상 자체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불가피한 것이다.

교육에 대한 연구는 그 관점을 크게 교육행위에 관한 것과 교육현상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교육행위를 연구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교육담당자의 관점에서 교육의 원리를 개발하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적·응용적인 연구를 전개하는 활동을 뜻한다.

반면에 교육현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교육을 객관적인 현실로 관찰하는 입장에서, 교육활동 또는 교육제도 등에 관한 배경·특성, 그리고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 설명하는 활동이다.

종래의 교육학은 주로 교육행위에 관한 연구, 즉 교육실천학이 지배적이었으며, 교육을 사실 혹은 현상으로 파악하여 기술, 설명하는 일은 주된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연구관점은 서로 유리되어서는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현실에 대한 이론적 기술과 설명이 없는 교육실천학은 현실과 단절된 교육프로그램을 낳기 쉬우며, 과거나 미래에 대한 체계적인 개발 및 계획이 불가능해지기 쉽다.

또한 교육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교육행위에 대한 실천적인 연구가 축적되어야 참다운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관점과는 별개로, 오늘날 교육학의 세분된 분야를 분류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크게 학교교육학·가정교육학·사회교육학과 같이 교육이 실시되는 장(場)을 중심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기초교육학·교과교육학·교육방법학과 같이 학문적 성격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교육기초학에는 교육철학·교육사학·교육심리학·비교교육학 등이 속하며, 교육방법학에는 교육행정학·교육공학·학습지도 및 교육과정·교육통계학·초등교육학·특수교육학·중등교육학·고등교육학·교사교육학 등이, 교과교육학에는 각 과의 교육학이 해당된다.

교육이란 인류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성립된 사회사상(社會事象)의 하나이므로, 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경험의 성패를 통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의견이나 주장이 적립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이 교육사상이나 교육론으로 계승되는 한편 저술을 통해 읽혀오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교육에 대한 체계적이며 학문적인 연구의 성과는 아니었다.

17세기 이후 라트케(Ratke)·코메니우스(Comenius)·페스탈로치(Pestalozzi)·프뢰벨(Fr○bel) 등에 의하여 교육의 이론적 탐구가 전개되어왔으며, 교육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기획은 19세기 초 헤르바르트(Herbart,J.F.)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808년에 『일반교육학』을 저술하고 1835년에 『교육학강의요강』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을 결정하기 위해 철학을, 교육의 과정과 수단·방법을 돕기 위해 심리학을 각각 교육학의 보조과학으로 삼아 연구를 전개하였다. 그 뒤 제자들이 그의 교육학을 발전시켜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교육학의 도입

우리 나라에서 교육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몇몇 학자들이 국내외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연구물을 발표하고 외국의 이론을 도입하는 등, 교육학연구의 선구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대학에 교육학과가 설치된 것은 광복 후의 일이며, 민족항일기의 제반 정세에서 우리 나라 교육학자가 우리 나라의 교육행위와 교육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 발전시키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던 것이다.

따라서 개화기 이후 광복 이전까지의 시기는 교육학연구전사(敎育學硏究前史)에 속한다고 보아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교육학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된 최초의 연구물은, 1906년 유근(柳瑾)이 『대한자강회월보』에 「교육학원리」를 역술하여 연재한 것에서 비롯된다. 원저자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연재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총론에서 체육·지육·덕육을, 본론에서는 학교교육·사회교육·가정교육을, 결론에서는 교육학의 성격과 교육방법을 다루려 한 체재로 보아, 매우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 뒤 1908년에는 정영택(鄭永澤)이 『기호흥학회월보』에 「교육학」을 연재하여 교육의 목적·의의·기능·필요의 네 가지 주제에 관해 논하였다. 또, 같은 해에 최광옥(崔光玉)이 『교육학』을 역술,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교육학 교과서이다.

이 책의 제1편 총론에서는 교육의 의의, 교육의 필요, 교육의 제한, 제2편 목적론에서는 교육의 목적,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제3편 방법론에서는 교수·훈련·체육, 제4편 가정교육론에서는 가정교육의 가치, 가정과 학교의 관련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어서 유전겸(兪銓兼)이 저술한 『간명교육학(簡明敎育學)』(1908) 등을 들 수 있다. 1920년대부터는 일본인들이 개설적인 입문서로서 『한국교육사』·『교육철학』 등을 저술하였는데, 이들 연구는 학문적인 관심에서라기보다는 일제의 한국통치정책의 하나로 식민지사관에 입각하여 저술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국교육의 현상』(表孫一, 1910)·『조선교육제도사』(小田省吾, 1923)·『조선의 교육』(弓削幸太郎, 1923)·『조선교육사고』(高橋濱吉, 1927)·『조선교육문제관견』(大野謙一, 1936) 등이 있다.

한편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H.H.)의 『한국현대교육 Modern Education in Korea』(1926)과 피셔(Fisher,J.E.)의 『한국의 민주주의와 선교교육 Democracy and Mission Education in Korea』(1928) 등은 우리 나라의 교육을 주제로 하여 올바른 한국의 교육사정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구실을 하였다.

이들 선교사들은 서구의 교육이론을 소개하였으며, 주요 선교사업의 일환인 교육사업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의 교육에 관한 연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1930년 최현배(崔鉉培)는 『조선민족갱생(朝鮮民族更生)의 도(道)』를 저술하였는데, 이는 1926년 『동아일보』에 66회에 걸쳐 연재한 것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다.

내용은 우리 나라의 말과 글, 교육을 다룬 것으로, 민족의 정신을 바로잡고 궁극에는 자주독립의 투쟁을 위한 역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당시 민족정신의 한 이정표를 제시해줄 뿐 아니라, 민족의 갱생을 위한 일종의 교육철학을 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1930년에 주요섭(朱耀燮)은 『조선교육의 결함』을 저술하여 당시 당면하고 있는 교육의 주요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였다.

광복 후부터는 교육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계속적으로 추구되어온 것은 민주주의교육으로서, 당시 교육학의 중심과제는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한 교육이론의 구축에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새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활발하게 전개되어온 교육개혁운동과 함께 발전하였다. 이는 듀이(Dewey,J.)의 교육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으로, 듀이의 이론은 미국에서 유학한 우리 나라 교육학자들에 의하여 소개되기도 하였으며, 1948년에 내한하여 교육학연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미국교육사절단의 영향이 컸다.

이러한 새교육운동은 종래의 지식편중의 교과조직과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생활중심·아동중심으로 교육과정 및 방법을 전개해야 한다는 진보주의교육이념이 연구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946년에 오천석(吳天錫)은 『민주주의교육의 건설』을 저술하여 미국의 대표적 교육철학을 우리 나라 교육계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서는 권력이 학문의 연구나 교육의 방법을 구속해 온 한국교육의 오랜 병폐를 배척하고자 하였다. 또한, 교육의 자유는 인류의 진보와 사회의 복지를 위해서 불가결한 것이라는 사상을 낳게 하는 계몽서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그 뒤 우리 나라의 교육연구는 민주주의교육·진보주의교육연구를 주류로 삼으면서 본질주의적인 교육철학과 대비되는 길을 걸어오고 있다.

후자는 전통적 교육, 전자는 새 교육·진보주의교육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교육학의 정립을 위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전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교육학은 광복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외국학자의 교육이론이나 교육방법을 수용하는 데 치우친 점이 있었으며, 일시적이고 상황적인 연구로 그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창립된 한국교육학회를 중심으로 점차 우리의 교육학 정립을 위한 향방을 찾고 교육학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다.

교육학 연구의 전개

우리 나라 교육학연구의 영역별 개관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교육철학

교육철학이란 교육의 개념·목적·과정·조직·정책 등에 관한 원리, 혹은 이들과 관련된 문제의 해결을 철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좁게는 이상적 교육의 형태와 원리에 관한 신념이나 주장을 일컫는 것으로도 이해되나, 학문으로서의 교육철학은 철학적 방법에 의한 교육의 현상과 행위에 대한 탐구활동과 그것을 통하여 획득된 지식의 체계를 말한다.

광복 후 우리 나라 교육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식민지적 교육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이념에 따라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앞에서 말한 오천석의 『민주주의교육의 건설』은 한국교육의 민주화와 교육철학의 좌표를 제시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와 함께 미군정 아래에서는 듀이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교육이 형성되어, 이에 바탕을 둔 새 교육사상이 오랜 기간 동안 지배적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초기 한국교육철학분야의 연구에 있어 선구적 구실을 한 사람 중에는 일반 철학자들이 많았으며, 교육학자는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 듀이에 관한 연구의 대표적 학자는 오천석·임한영(林漢永)을 들 수 있다.

오천석은 『경험과 교육』·『민주주의와 교육』·『듀이선집』 등의 역서와 『민주교육을 지향하여』 등의 저서를 통해 민주주의의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임한영은 『듀이교육사상의 연구』를 통하여 듀이사상에 대한 깊이있고 종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밖에도 한기언(韓基彦)·김계숙(金桂淑)·김재만(金在萬)·박봉목(朴奉穆) 등도 듀이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번역활동으로는 듀이 사조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어 바람직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교육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저서로는 1957년 임한영의 『교육철학』과, 최근의 것으로 1971년 한국교육학회의 『교육의 철학적 이해』와 1972년 오천석의 『교육철학신강』 등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무렵 듀이 일변도의 진보적 교육이론에 대한 비판과 반론이 제기되어, 듀이의 교육철학과 대립되는 본질주의 교육철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질주의 교육철학의 대표적인 학자 유형진(柳炯鎭)은 1968년에 『교육의 주체성』이라는 저서를 통해 진보주의 교육철학을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본질주의 교육이념을 제시하였다.

한편으로는 실존주의 교육철학을 주장한 학자들로서 김은우(金恩雨)와 이규호(李奎浩) 등은 인간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의 실존적 가치를 논하였다. 또한 한기언 등은 『한국교육의 이념』에서 교육의 근본원리를 중시하는 기초주의를 주장하였다.

한편, 교육철학을 연구하기 위한 기관을 초기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1964년 한국교육학회 내에 설치된 교육사·교육철학연구회와 1972년 교육개발원의 연구부서 등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적 교육이념의 수립을 위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오천석·임한영·유형진·한기언·차석기(車錫基)·안호상(安浩相)·손인수(孫仁銖)·김정환(金丁煥)·박봉목·정순목(丁淳睦)·김인회(金仁會)·이돈희(李敦熙)·한동일(韓東一)·오인탁(吳麟鐸) 등의 학자들이 많은 연구물을 발표한 바 있다.

교육사상의 다양화와 교육이념 모색을 위한 갈등 속에서도 한국교육철학이 지향하는 민주화·인간화·자율화·한국화를 위한 연구·노력이 적지 않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교육사학

교육학에서의 교육현상이란 사람이 역사와 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의 교육학에서는 당연히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어떤 요인들에 의해서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어왔다. 또한 그것들이 어떤 성격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이해하는 일을 다른 무엇보다 선행된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초기에는 교육학연구의 주된 대상이 교육방법학에 치중되어, 교육사·교육철학의 연구는 교육학연구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즉,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전통을 찾아보려는 학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 1천 명의 한국교육학회 회원 중 20명에 불과했던 것이 1970년대 중반까지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 분야 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교육사학에 관한 연구에 많은 발전이 있어왔다. 교육사학의 연구는 한국·동양·서양교육사의 세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한국교육사부분을 보면 광복 후 1947년과 1949년에 이만규(李萬珪)가 『조선교육사』 상·하권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한국교육사에 대한 저서로는 처음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개항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구교육’, 그 이후를 ‘신교육’으로 나누는 양분법을 쓰고 있다. 이어서 1950년대에는 박상만(朴尙萬)의 『한국교육사』 상·중·하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교육사일반 및 한국교육사에 대한 학적 관심은 거의 찾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 무렵인 1963년에 한기언이 『한국교육사』를 저술하였다. 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교육의 제도와 사상을 통관(通觀)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어서 손인수의 『한국교육사상사』, 오천석의 『한국신교육사』 등을 비롯하여 이 분야의 저서가 20여 권 간행되었다. 또한, 1972년에 한국교육사연구회편으로 『한국교육사』가 간행되었다.

이 책은 우리 나라 교육사 전공자들의 공동집필이라는 점과 아울러 이 방면의 통사(通史)로서는 높은 수준을 보인 학적 성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연구와 더불어 한국교육사연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서 특기할 일은 중앙대학교 교육학과편인 『한국교육목록』이다.

또한 교육실천사 편찬사업으로서, 역사가 긴 각급 학교사(學校史)가 거의 이루어졌다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한편, 동양교육사연구는 이 분야에서 가장 부진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분야의 저술은 역사학자인 채희순(蔡羲順)이 1970년에 저술한 『중국고대사연구』가 처음이다. 교육사학자로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사람은 불과 수명에 지나지 않으며 아직도 미개척분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서양교육사분야로는 이인기(李寅基)·임한영·김용기(金容基)·한기언 등에 의하여 저서와 논문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은 통사적인 접근방법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서양교육사분야의 연구성과는 아직 개설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따르고 있으나, 연구의 심화를 위한 정초작업이 진행 중이다.

교육심리학

우리 나라의 교육학연구에서 교육심리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그것은 광복 이후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 새로운 교육이념·내용·방법 등을 찾고자 하는 새교육운동과 함께, 교육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피교육자의 능력·개성 등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심리학적 기초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연구의 영역은 ① 측정 및 평가, ② 생활지도 및 상담, ③ 학습 및 교수, ④ 기타 교육심리학적 연구로서, 교육심리·발달심리·특수교육·청소년문제 등에 관한 연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먼저 측정 및 평가영역에서는 1950년대에 정범모(鄭範謨)·김용기·김재은(金在恩)·황응연(黃應淵) 등이 저서 및 연구물을 발표하였으며, 중앙교육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교육심리연구실을 선두로 한 서울과 각 지방의 관련연구기관의 활동도 활발하였다.

이러한 초기의 도입단계에서는 경험적인 교육연구방법을 갈구한 시기여서, 측정·평가 및 통계학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주력하였다.

그 뒤 1960년대에 와서는 이들 방법을 십분 발휘하여 앞에서 말한 학자들 이외에도 전용신(田溶新)·이몽규(李夢揆)·김호권(金豪權)·황정규(黃禎奎) 등에 의하여 보다 세련되고 내용이 풍부한 연구논문·저서·보고서가 쏟아져 나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단계를 거쳐 그 동안의 연구활동을 자성하고 재정비하는 1960년대 후반의 안정기를 맞이하여 측정 및 평가영역에 속하는 연구활동은 양보다 질에 치중하게 되었고, 우리 나라의 교육현실을 감안한 실용성있고 알찬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생활지도 및 상담영역의 초기연구는 새교육사조와 함께 정범모가 도입한 심리측정이 널리 보급되어, 생활지도 및 상담분야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아동 중심의 비지시적 상담이론과 맥을 같이하여, 이 분야에서의 커다란 두 가지 사조를 이루면서 갈등 없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 그 효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 없이 실제의 교육현장에 파급되면서, 상담교사에 대한 훈련부족 및 지나친 입시경쟁과 생활지도와 훈육의 혼돈 등으로 커다란 혼란을 겪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이영덕(李榮德)·정원식(鄭元植)이 공저로 간행한 『생활지도의 이론과 실제』를 통해 혼란된 개념을 정리하는 등, 생활지도와 상담의 개념을 규정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시작하였다.

또한 1962년에 최초로 발족한 서울대학교 내 학생지도연구소를 효시로 전국의 주요대학에 학생지도연구소가 설립되어 많은 연구물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상담효과에 대한 이론적·실험적 연구의 부재, 심리검사결과의 활용저조, 소외된 생활지도현실 등 1950년대의 문제점은 여전히 누적된 상태였다. 1970년대 이후 오늘까지는 전문직으로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즉, 상식적인 수준의 논의에서 탈피하여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고 내적인 충실을 기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이론적인 주장에 대한 효과를 실증하여 그 증거를 제시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학습 및 교수영역은 학습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행동주의이론·장이론(場理論), 신행동주의에 속하는 홀(Hall,G.S.) 및 스키너(Skinner,B.F.)의 이론, 그리고 피아제(Piaget,J.)와 브루너(Bruner,J.S.)를 중심으로 한 인지이론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입된 셈이다.

그리고 교수이론의 입장에서도 단원교수법·문제해결학습·다인수학급 및 교수·팀티칭(team teaching)·프로그램학습·개별화학습·완전학습 등 여러 가지 교수법이 도입, 소개되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그 동안 거의 대부분이 응용연구에 치중한 경향이 짙었다. 기본적 연구는, 그 자체로서는 응용이나 보급의 폭이 좁은 반면에 하나의 학습이론을 구축하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학습이론 또한 갖가지 학습을 가능케 해 주는 조건, 즉 교수이론 및 그에 관련된 기본적 변인에 관한 연구가 아울러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사회학 및 사회교육

인간의 교육과 사회와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교육과 교육제도는 사회와 관련하여 연구, 분석, 개혁되어져야 한다.

다른 학문이 단독으로 존립할 수 없는 것처럼 교육학과 사회학은 특히 긴밀한 관계 속에서 교육 사회학의 출범에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사회학은 학문의 연조가 얕은 관계로 우리 나라에서의 연구역사도 짧다.

광복 이후 우리 나라의 교육학 동향은 심리학에 편중되어, 사회학적 기초 위에서 교육학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부족하였다.

그러나 점차로 교육도 넓은 사회과학적 기반 위에서 보아야 되겠다는 학문적인 욕구가 고조되어왔고, 더욱이 교육사회학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을 높이 평가하게 됨으로써, 이 방면의 연구가 나날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동안 이 분야의 학적인 발전을 위해서 서명원(徐明源)·진원중(陳元重)·황종건(黃宗建)·박용헌(朴容憲)·차경수(車京守)·이상주(李相周)·장진호(張眞鎬)·김선호(金善鎬)·이중(李中)·송병순(宋柄淳) 등의 노력이 컸다.

교육사회학의 연구동향과 전망은 첫째, 이 방면의 외국도서가 다방면으로 계속 도입되고 있어 교육사회학연구의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는 증거를 나타내주고 있다.

둘째, 교육사회학과 인접과학과의 관계를 들 수 있는데, 인접분야와의 공통된 문제와 방법으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교육경제학·교육정치학·비교교육학·문화인류학 또는 매스컴분야 등과의 학문적 공통과제를 발견하여 공통된 접근을 시도하는 경향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셋째, 교육학도들이나 교육행정직 및 일반학계에서 교육과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근대화나 지역개발 등 사회의 요청과 국가의 당면한 필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넷째, 앞으로 진행될 사회개혁을 위한 정책에 수반하여, 소외된 계층이나 지역 또는 도시하류층의 교육불균형 요인에 대한 실제적 현장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들의 교육기회균등과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학문적 자료의 제공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다섯째, 앞으로 교육사회학연구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학문적 성격을 반성하여, 보다 폭넓은 독자적인 통합학으로서의 학문 정립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하며, 경험적 연구와 방법론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 광복 이후

6·25전쟁 이전까지의 교육과정분야는 주로 초등교육이 주대상이었으며, 교육과정이론보다는 새 교육 또는 진보주의 교육사조를 받아들여 학습지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교육과정이론이 체계적으로 논의된 것은 전후 3차에 걸쳐 내한한 미국교육사절단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차 교육사절단은 귀국에 앞서 우리 나라의 교육과정 개선을 권고하기 위한 「교육과정지침」이라는 보고서를 남겼다. 그 내용은 교육과정의 원리, 목표의 설정, 내용의 선택, 학습지도안의 조직과 교육과정 평가의 실제, 한국교육의 교과별 교육과정에 대한 제언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경험적 교육과정이 일반적으로 보다 우수한 교육수단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경험적 교육과정을 여러 원리에 입각하여 풀이하였다.

1950년대 중반 중앙교육연구소는 번역활동 등을 통하여 미국의 교육이론을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 나라 학자가 쓴 최초의 교육과정 저서로는 1956년에 간행된 정범모의 『교육과정』을 들 수 있다.

그는 당시까지의 교육과정운동이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 하나의 유행처럼 사라졌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그러한 교육과정개조운동에 있어 우리의 기본적 사고방식에 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저술에서는 그러한 점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교육과정에 대한 전환된 사고방식을 시사해보려고 하였다. 이 책은 당시 교육과정분야의 유일한 저술로서, 많은 사람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 뒤 1960년대에 들어서부터 이영덕·함종규(咸宗圭)·강우철(康宇哲) 등이 교육과정에 대한 저서를 발간하였다. 이들이 저술한 교육과정도서의 공통된 특징은 대체로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중요하게 다룬 점이다.

1970년대에 와서는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주장한 브루너의 이론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관련 서적들이 많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는 데 그쳤을 뿐 그러한 접근방법에 의한 교육과정의 체계를 세우지는 못하였다.

본격적인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다룬 서적으로는 이영덕의 『교육의 과정』, 홍웅선(洪雄善)의 『새교육과정의 이론적 기저』, 이경섭(李慶燮)의 『현대교육과정론』 등이 있다.

이처럼 우리 나라에서는 교육과정분야에 대한 연구가 우리의 것으로 토착화되지 못하였으며, 새로운 외국이론의 신속한 도입과 함께 이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우리의 것으로 심화, 발전시킬 수 있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행정학 광복 이후

우리 나라의 교육행정은 민족항일기의 교육행정 형태에 대한 반성·비판과 함께 중요한 관심분야로 대두되었다.

그것은 국민교육의 규모가 방대, 복잡해지고 그 운영의 내·외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특수분야로서 분화, 발전한 것이 교육행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주적 교육행정의 이념과 그에 근거한 교육정책 및 교육행정의 운영방식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교육행정가의 재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점차 활발해진 교원양성기관의 교육과정에서도 강조되었다.

1950년대만 해도 교육행정학연구는 극히 한정된 분야에 국한되었으며, 교육행정의 개념 자체도 한정된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와서 점차 새로운 연구영역이 추가되고 연구방법의 심화가 이루어져,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교육행정학 고유의 분야에서 그 내용이 확대되어 종래에 미치지 못했던 분야, 이를테면 학생행정·사무관리 등의 새 영역이 첨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계획·교육정책·교육제도·교육경제학·교육경영학 등이 새로운 분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체계분석·모의연습과 같은 새로운 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교육행정학에 관한 이론적 연구가 활발히 시작되었다.

주요한 구실을 담당한 교육행정학자로서는 강길수(康吉秀)·김종철(金鍾喆)·백현기(白賢基)·김영식(金永植)·신극범(愼克範)·김윤태(金潤泰)·김재범(金在範) 등이 있다.

1960년에 창설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의 교육행정연수원에서는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한 실증적 연구를 통하여 교육행정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학문적인 발전에 대한 한계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자 1963년 서울대학교에 교육행정학 전공을 개설한 교육대학원이 설립되어 학문적 심화를 기하는 선두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67년에는 한국교육학회 산하에 교육행정학연구회가 발족되어, 교육행정현상을 기술하여 예측하기 위한 이론적 연구를 수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육행정학에 있어서는 이론적인 결핍을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비교교육학

1969년에 창립된 한국비교교육학회(뒤에 한국교육학회 비교교육학연구회로 개칭)는 비교교육학연구의 추진체가 되고, 비교교육학 전공자에게 연구발표의 기회가 제공되는 장(場)으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1970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비교교육학대회에 참여하여 국제적 활동에도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그 동안 이 분야의 학적인 발전을 위하여 유형진·임한영·박준희(朴俊熙)·김선호·이규환(李圭煥) 등의 노력이 컸다.

우리 나라의 비교교육학연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진행되었다. 비교교육학연구를 위한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외국의 교육제도를 많이 보고 연구함으로써 실제적 교육현상에 대한 인식을 풍부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외국의 교육제도를 실제로 접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보다 많은 학자들이 직접 외국교육을 관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구의 심화·확대를 기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구방법이다. 현재까지 외국교육에 대하여 연구한 문헌은 많지만, 비교학적 방법을 제대로 적용한 것은 극히 적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학적 관점, 역사 및 철학적 관점, 행정 및 제도학적 관점 등 어떠한 각도에서 비교학적 연구를 하든지간에 비교의 본질과 비교적 연구방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훈련이 요구된다.

전망 및 과제

우리 나라의 교육학도 이미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우리의 것을 찾고 정비함으로써 굳건한 연구의 기반을 다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즉, 종전에 흔히 있어왔듯이 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방법·교육이론 등을 모방하고 수용하기에 급급하거나 일시적이고 상황적인 연구에 머물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제는 지난 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교육학에 대한 이론체계를 세우고, 한국교육의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다른 학문에서도 그렇듯이 연구영역이 심화되고 넓어짐에 따라 교육학분야의 전문적인 분화현상이 특색을 이루고 있다.

즉, 교육학연구를 위한 학회만 보더라도 한국교육학회에 12개의 전문적인 분과학회가 있고, 그 밖에도 교육학연구를 위한 많은 전문적인 학회가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분화되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교육학연구를 위한 각종 학회에서는 각 전문분야에 걸친 산적한 연구활동을 통해서 국내의 관련학회는 물론, 외국의 학회와도 학술교류를 전개하여 국제적인 연구무대를 통한 학술진흥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오늘의 우리 교육은 21세기에 대비하는 교육의 새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교육제도, 내용과 방법 등 제반 측면에 걸쳐 개혁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종합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 비추어서도 한국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 이론적 바탕과 실태 및 미래의 전망을 위한 계획적인 준비와 노력을 경주하여, 한국교육학의 정립을 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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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에 있어서의 敎育學硏究·敎育學界動態를 중심으로·』(韓基彦, 淸凉苑 13,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1966)
『韓國敎育學硏究史』(韓國敎育學硏究史編纂委員會, 韓國敎育學會, 1975)
『韓國敎育學會20年史』(韓國敎育學會, 1975)
『韓國敎育硏究 1』(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
『韓國敎育學의 成長과 課題』(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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