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공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8년 의정부에 의하여 재기(才器)가 있다고 추천되어 충청도관찰사의 물망에 올랐으나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박수문(朴守紋)의 반대로 임명되지 못하였다. 이듬해 기묘사화 때는 병조참지로 있으면서 입직승지를 제쳐놓고 왕의 밀명을 전달하는 등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사림파 제거에 앞장선 공으로 우승지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경기도관찰사로 나아가 백성들에게 염장(鹽醬)을 제공하는 등 진휼에 힘썼다. 1522년 예조참판이 된 뒤 병조참판과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고, 1527년 병조판서로 군권을 장악하였으나, 심광언(沈光彦)에 의하여 붕당을 이룬다는 탄핵을 받고 경상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시호는 경숙(景肅)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백헌집(白軒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기묘록속집(己卯錄續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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