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1348년(충목왕 4) 영주(寧州: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 수령으로 파견되어 치적이 있었으며, 이 때 회고정(懷古亭)을 세웠다. 공민왕(恭愍王) 초에는 해주(海州)에 외보(外補)되어 역시 치적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1358년(공민왕 7)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 그리고 뒤이어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에 올랐다.
1362년 전주도병마사(全州道兵馬使), 이듬해 나주도병마사(羅州道兵馬使)를 거쳐 1365년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1372년에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어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벼슬이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렀으며 성품은 간사하나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시호는 간헌(簡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