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질부(質夫), 호는 은궤옹(隱几翁). 대사헌 성세정(成世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윤(成倫)이고, 아버지는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 성효관(成效寬)이며, 어머니는 심사공(沈思恭)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묘서 부봉사로서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왕을 따라 정주로 피난하였고, 그 뒤 사옹원직장·평시서직장이 되었다. 159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거쳐, 1596년 예조좌랑 및 정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홍문관부제학, 이듬해 이조참의·경연관을 지낸 뒤, 13년간 대사간으로 있었으며, 유영경(柳永慶)의 수하에 들어가 유당(柳黨)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정계가 어지러워지자 고향에 은퇴하여 세상일과 인연을 끊고 한가한 여생을 보냈다. 본성이 인자하고 이웃을 공경하되 그 근본을 지킬 줄 알며 사무를 처리할 때는 관후하나 스스로 그 법도를 엄히 하여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하는 모범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