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홍문관부제학, 이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은궤옹(隱几翁)
  • 질부(質夫)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618년(광해군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홍문관부제학|이조참의|대사간
  • 출생 연도1546년(명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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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홍문관부제학, 이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질부(質夫), 호는 은궤옹(隱几翁). 대사헌 성세정(成世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윤(成倫)이고, 아버지는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 성효관(成效寬)이며, 어머니는 심사공(沈思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묘서 부봉사로서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왕을 따라 정주로 피난하였고, 그 뒤 사옹원직장·평시서직장이 되었다. 159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거쳐, 1596년 예조좌랑 및 정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홍문관부제학, 이듬해 이조참의·경연관을 지낸 뒤, 13년간 대사간으로 있었으며, 유영경(柳永慶)의 수하에 들어가 유당(柳黨)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정계가 어지러워지자 고향에 은퇴하여 세상일과 인연을 끊고 한가한 여생을 보냈다. 본성이 인자하고 이웃을 공경하되 그 근본을 지킬 줄 알며 사무를 처리할 때는 관후하나 스스로 그 법도를 엄히 하여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하는 모범을 보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성호문집(星湖文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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