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홍문관부제학, 이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질부(質夫)
은궤옹(隱几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6년(명종 1)
사망 연도
1618년(광해군 10)
본관
창녕(昌寧)
주요 관직
홍문관부제학|이조참의|대사간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 중기에, 홍문관부제학, 이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질부(質夫), 호는 은궤옹(隱几翁). 대사헌 성세정(成世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윤(成倫)이고, 아버지는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 성효관(成效寬)이며, 어머니는 심사공(沈思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묘서 부봉사로서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왕을 따라 정주로 피난하였고, 그 뒤 사옹원직장·평시서직장이 되었다. 159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거쳐, 1596년 예조좌랑 및 정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홍문관부제학, 이듬해 이조참의·경연관을 지낸 뒤, 13년간 대사간으로 있었으며, 유영경(柳永慶)의 수하에 들어가 유당(柳黨)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정계가 어지러워지자 고향에 은퇴하여 세상일과 인연을 끊고 한가한 여생을 보냈다. 본성이 인자하고 이웃을 공경하되 그 근본을 지킬 줄 알며 사무를 처리할 때는 관후하나 스스로 그 법도를 엄히 하여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하는 모범을 보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성호문집(星湖文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집필자
공원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