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발굴조사되었다. 합장묘로 된 이 무덤 안에서 나전옷칠한 관 속에 40여 점의 의복이 있었다.
비문에 의하면 이형록부부의 분묘로서, 이형록은 1712년(경종 2)에 출생하여 중추부사와 경복궁위장을 지냈고 1785년(정조 9)에 죽었으며, 부인은 1719년(숙종 45)에 출생하여 1763년(영조 39)에 죽었다.
이 나전옻칠 관 속에서 출토된 의복은 남자저고리 3점, 남자바지 4점, 겹치마 2점, 배자 1점, 장옷 1점, 복건 1점, 신발 1점, 술띠 2점, 천금 1점, 지금 1점이다. 특히, 남자저고리에서부터 도포까지는 얇은 비단과 양단으로 되어 있으며, 바지는 누비옷 겹옷으로 되어 있다.
여자의 저고리에서부터 장옷까지는 명주로 되어 있는데, 3회장ㆍ회장ㆍ누비옷ㆍ꼬리치마ㆍ맞깃 등으로 그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고 부분구조와 제작수법, 옷의 재질을 살필 수 있는 실물이 적은 18세기의 복식해명에 있어 의상변천과정을 밝히는 중요자료로 주목되며, 조선 전기의 옷과 기본형태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의상들과는 일련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1966년에 조사된 황해도 금천군 서북면(현재 북한의 황해남도 평천군) 원산리 유적 출토의 이창령부부의 의복 30여 점과 좋은 대비를 이루는 중요한 복식연구의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