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집(士集), 호는 성암(省庵).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 성사달(成士達)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성세강(成世康)이며, 어머니는 강릉최씨(江陵崔氏)로 현감 최흥종(崔興宗)의 딸이다.
20세에 남언경(南彦經)·김근공(金謹恭)에게 학문을 배웠다. 「미발설(未發說)」을 지어서 남언경에게 질정하매 남언경이 깊이 탄복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경전 및 제자백가로부터 불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1578년(선조 11) 경연관(經筵官)의 상계(上啓)에 의하여 남치리(南致利) 등과 함께 천거되어 강릉참봉(康陵參奉)이 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1580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에 제수된 뒤 창릉참봉(昌陵參奉)·왕자사부·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를 거쳐 진안현감이 되었다. 이후 평화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비상시에 대비하여 훈련에 힘써 1587년 침입해온 왜구의 격퇴에 전공을 세웠다. 1610년(광해군 2) 왕의 잠저(潛邸) 때 사부(師傅)의 공으로 하락(河洛)·박광전(朴光前) 등과 함께 당상관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