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왕자사부, 사섬시주부, 진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집(士集)
성암(省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5년(인종 1)
사망 연도
1588년(선조 21)
본관
창녕(昌寧)
주요 관직
왕자사부|사섬시주부|진안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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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왕자사부, 사섬시주부, 진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집(士集), 호는 성암(省庵).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 성사달(成士達)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성세강(成世康)이며, 어머니는 강릉최씨(江陵崔氏)로 현감 최흥종(崔興宗)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20세에 남언경(南彦經)·김근공(金謹恭)에게 학문을 배웠다. 「미발설(未發說)」을 지어서 남언경에게 질정하매 남언경이 깊이 탄복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경전 및 제자백가로부터 불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1578년(선조 11) 경연관(經筵官)의 상계(上啓)에 의하여 남치리(南致利) 등과 함께 천거되어 강릉참봉(康陵參奉)이 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1580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에 제수된 뒤 창릉참봉(昌陵參奉)·왕자사부·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를 거쳐 진안현감이 되었다. 이후 평화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비상시에 대비하여 훈련에 힘써 1587년 침입해온 왜구의 격퇴에 전공을 세웠다. 1610년(광해군 2) 왕의 잠저(潛邸) 때 사부(師傅)의 공으로 하락(河洛)·박광전(朴光前) 등과 함께 당상관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명재유고(明齋遺稿)』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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