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그는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일본 왕이 준 붉은 비단 100필을 가지고 돌아오던 중에 신라인에게 탈취당했는데, 이로 인해 두 나라 사이에 원한 관계가 비롯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의 주(注)에 두 가지 설화가 실려 있다.
하나는 스진왕(崇神王) 대에 이마에 뿔이 난 사람이 에쓰국(越國)사반포(笥飯浦 : 福井縣 敦賀市)에 도착해 그 곳의 지명을 쓰누가(角鹿)로 하였다. 그는 의부가라국(意富加羅國) 왕의 아들로 이름이 도노아아라사등(都怒我阿羅斯等) 또는 우사기아리질지간기(于斯岐阿利叱智干岐)라고 했는데, 처음에 혈문(穴門 : 下關市)에 닿았으나 상륙하지 않고 북해(北海)로 돌아 이즈모국(出雲國)을 거쳐 사반포에 이르렀으며, 그가 귀국할 때 일본 왕의 이름을 따서 본국의 이름을 미마나국(彌摩那國)으로 고치게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도노아아라사등이 본국에 있을 때 황우(黃牛)의 대가로 백석(白石)을 얻어 백석으로부터 변한 동녀(童女)를 아내로 맞았으나 도망가 그 아내를 찾아 일본에 갔는데, 그녀는 난바(難波 : 大阪市) 지방과 도요구니(豊國 : 大分縣) 지방의 비매어증사(比賣語曾社)의 신(神)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설화의 기본 요소는 『고사기(古事記)』의 천지일모(天之日矛) 계통의 설화에서 파생, 확대된 것으로서, 신라계 이주민에 대한 설화가 가야계 설화에 혼입된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나오는 질지(叱智)·사등(斯等)·간기(干岐) 등은 수장(首長) 또는 귀인(貴人)의 뜻을 가진 인명 끝에 붙이는 존칭이다.
‘소나갈’과 ‘도노아’는 각각 일본 음으로 ‘소노가’와 ‘쓰누가’로 이는 동일 인물에 대한 이칭(異稱)으로서 ‘이마에 뿔이 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소나갈질지는 새 깃털 모양의 관을 쓴 변진(弁辰)·가야 계통의 수장을 나타내는 별명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또 ‘도노아’는 신라와 가야의 최고 관등인 각간(角干)을 ‘쓰누가’로 뜻을 새겨 읽은 것이며, 그는 ‘각간 아라사등’이라는 인물이거나, 구체적으로 『일본서기』게이타이왕(繼體王) 23년조에 나오는 가라왕아리사등(阿利斯等)과 동일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의부가락국도 대가야국 또는 금관가야국 등으로 달리 비정하고 있으며, 설화가 반영하는 시대에 대한 견해도 1∼3세기 또는 6∼7세기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이러한 설화적 기록은 특정 인물에 대한 한정된 사실만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가야 지방의 세력 집단들이 일본과 교류하거나 이주, 정착하던 역사적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도노아아라사등’이 거쳐간 혈문-이즈모국-에쓰국이라는 경로 또한 한반도로부터 일본의 기내(畿內 : 서울을 중심으로 가까이 뻗어 있는 행정 구역의 안) 지방에 이르는 주요한 해상 교통로의 하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