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초기국가시대 삼한의 소국으로 추정되는 염사의 군장.
내용
염사치는 염사읍의 ‘치’, 즉 염사읍의 수장(首長)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염사는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정미면 또는 경상남도 김해지방 등으로 추정되기도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삼한사회에 있어서 읍군은 각 소국(小國) 단위의 지배자급에게 주어졌던 칭호였을 것이다. 관작을 줄 때에는 의책(衣幘 : 옷과 모자)과 인수(印綬 : 인장)를 함께 주었으며, 이러한 관작의 수수관계는 정치적인 지배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물품의 교역통로와 교역권을 공식적으로 확보한다는 경제적인 기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후한서(後漢書)』
- 『삼국지(三國志)』
- 『한국고대(韓國古代)의 생산(生産)과 교역(交易)』(이현혜, 일주각, 1998)
- 「삼한문제(三韓問題)의 신고찰(新考察)」 1(이병도, 『진단학보(震檀學報)』 1, 1934;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1976)
- 「염사치설화고(廉斯鑡說話考)」(정중환, 『대구사학(大丘史學)』 7·8합집(合輯),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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