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 활동을 한 참의 김우(金佑)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다시 그의 아들 김득주(金得注)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용천(龍川) 소위포에서 공을 세운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1759년(영조 35) 그의 5대손 김양기(金良器)가 일기체로 기록하기 시작해 6대손 김이긍(金履兢)이 완성, 간행하였다.
내용은 제1책의 서문에 먼저 1759년(영조 35)에 이익정(李益炡), 1797년(정조 21)에 이관용(李觀用), 1816년(순조 16)에 차신용(車信用), 1825년(순조 25)에 김지태(金持泰) 등이 이 책의 간행 경위를 설명하였다. 이어서 소위포창의진도(少爲浦倡義陣圖)와 더불어 김우의 약력을 소개한 참의공 연보(參議公年譜)가 수록되었다.
본문은 1627년(인조 5) 1월 14일부터 그해 12월까지 일기체로 기술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정묘호란이 일어난 과정, 이전에 항복한 강홍립(姜弘立)이 후금군(後金軍)과 함께 압록강으로 들어온 사실,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가도(椵島)에서 이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던 사실, 관서 지방이 적에게 함락되고 관민이 혼란에 빠져 조정에서는 그 대책을 위해 힘쓰던 일 등이 기록되었다. 이외에 김우 자신이 의병을 모아 소위포에서 항전하던 일, 모문룡과의 서신 왕래, 명군(明軍)과 협전(協戰)하면서 명군에게 군량을 보조하던 사실, 그밖에 여러 가지 전황, 그리고 소위포에서 승리한 김우의 5부자에게 그 공적을 치하하는 왕의 전지(傳旨)와 각 의병들에게 포상한 사실 등이 기록되었다.
다음에 김이긍이 쓴 발문이 있고 이어서 창의대장을 위시해 찬모(贊謀)·참모(參謀)·행영중군(行營中軍) 등 각 직책을 맡은 103인의 창의자(倡義者) 명단과 간단한 약력, 그리고 공적이 기재되었다. 제2책에는 조정과 명나라에서 김우에게 내린 문첩(文帖)과 장계·의병장서목(義兵將書目) 등을 복사해 놓았고, 직책·추증을 품의한 것과 용천부 향교에 배향한 사실이 기록되었다.
이 책은 개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간행되었으나, 내용 가운데는 정묘호란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그 시대 연구에 도움이 된다. 특히, 강홍립과 모문룡이 후금에 기울어져, 조선이나 명나라를 배반한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