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옷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부터 말기까지 사대부들은 집에서 입거나 외출시 도포나 대창의 등 겉옷의 밑받침 옷으로 입었고, 서민들은 겉옷으로 입었다.
사대부들은 명주나 비단으로, 서민들은 목면 등으로 지은 백색·흑색·청색·옥색의 소창의를 입었으나 조선시대 말기에는 두루마기와 함께 양반도 입는 옷으로 격이 높아졌다. 소창의는 소매가 좁고 무가 없으며, 겨드랑이부터 옆이 터진 포로 시대에 따라 형태에 변화가 있었다.
즉, 옷깃이 칼깃에서 두루마기 깃으로 변했고 화장이 짧아졌으며, 밑단 도련선이 수평으로 반듯해졌고 앞길의 중심선에 달렸던 겉섶이 좌측 길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신윤복(申潤福)이나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 보이는 양반들은 소창의에 세조대를 매고, 넓은 테의 갓이나 유건(儒巾), 그리고 짚신을 착용했고, 놀이갈 때는 앞자락을 뒤로 매고 띠를 매지 않았는데, 이것은 밑받침 옷으로 간편한 옷이었음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