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밀직사(判密直事)로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개경(開京)이 함몰되고 왕이 몽진(蒙塵)하게 된 원인을 수상(首相)인 홍언박(洪彦博)의 책임이라 하여 탄핵하다가 도리어 파면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김용(金鏞)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고, 이어 찬성사(贊成事)가 된 뒤 홍건적을 평정시킨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1364년(西北面體覆使)가 되었으나, 이듬해 신돈(辛旽)의 미움을 받아 시중(侍中) 경천흥(慶千興)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신돈이 쫓겨난 뒤 찬성사가 되었고, 그 뒤 연안부원군(延安府院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