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홍문관응교,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거듭 부모 상을 당하여 5년간 상복을 입고 강릉의 학담(鶴潭)에 은둔하였다. 10여 차례나 승지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마침내 병 때문에 의사를 찾아 서울로 돌아와 고양(高陽) 행호(杏湖)에 정자를 짓고 이를 범허정이라 이름지었다. 1678년(숙종 4)에 순창군수로 나갔다가 경신환국으로 귀경하였다.
다시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가 되어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청했고,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홍문관응교·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병조판서인 이사명(李師命)이 호포제(戶布制)를 시행하고자 하여 먼저 관서 지방에서 이를 시험해볼 것을 청하자, 적극 반대하여 시행을 철회시켰다.
승지·병조참지를 지내고 안동부사로 전임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복직되어 예조참의·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춘천부사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병으로 돌아왔다. 그 뒤 진주목사·형조참의·개성유수·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강개하고 벼슬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학문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범허정집(泛虛亭集)』이 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명곡집(明谷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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