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대(車羅大)의 몽고군이 전라도 연안 도서(島嶼)에 침공을 꾀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1256년(고종 43) 장군으로 수군(水軍) 300인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영광(靈光)에서 이광(李廣)과 연합작전을 계획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장성(長城) 입암산성(笠巖山城)에 입보(入保)하였다. 성내의 장정들이 모두 적에게 투항하는 불리한 여건임에도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몽고군을 대파하고 적장 4인을 포로로 잡는 큰 공을 세웠다.
1266년(원종 7)에는 몽고의 대일초유사(對日招諭使) 흑적(黑的)과 은홍(殷弘) 등을 안내하기 위하여 시어사(侍御史) 김찬(金贊)과 함께 흑적 일행을 따라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듬해 거제도(巨濟島)에서 되돌아와, 풍랑의 험함을 이유로 몽고의 일본초유를 막고자 노력하였다.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치사(致仕)하였는데 최후의 무인집정자였던 임유무(林惟茂) 집권시에 정치적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1270년 임유무가 제거되고 왕정복고(王政復古)가 되면서 그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