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이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후 자의(諮議) ·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 등을 거쳐 1767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임명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뒤 홍국영(洪國榮)의 뒷받침으로 1776년 동부승지 · 이조참의 · 예조참의 · 한성부좌윤 · 좨주(祭酒) 등을 거쳐, 1779년(정조 3)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해 홍국영이 실각하자 삼수부(三水府)에 안치되었다. 그 뒤 왕위계승에 대하여 올린 소에 흉역(凶逆)의 뜻이 있다 하여 옥에 갇히고 많은 유생의 공격을 받았다. 철저한 학문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대학자의 후예로서 한때 세도세력에 힘입었으나 결국 함께 몰락하였으며, 노론벽파(老論辟派)로 몰려 죽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은파유고(恩坡遺稿)』
- 『청선고(淸選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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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과암선생문집(果菴先生文集) 卷十五, 송덕상묘지명.(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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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삼수 유배 : 정조실록12권, 1781년(정조 5) 9월 14일. "호서 유생 연덕윤이 송덕상을 위해 통문을 보내어 선동하자 송덕상을 안치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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