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함경도관찰사, 대사헌, 개성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안(士安)
  • 행수(幸叟)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산(礪山: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함경도관찰사|대사헌|개성유수
  • 출생 연도1711년(숙종 3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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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함경도관찰사, 대사헌, 개성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사안(士安), 호는 행수(幸叟). 호조참판 송징은(宋徵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참찬 송성명(宋成明)이고, 아버지는 송익장(宋翼長)이며, 어머니는 박태규(朴泰奎)의 딸이다. 예조참의 송익보(宋翼輔)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6년(영조 22)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이듬해 예문관검열을 거쳐 1751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이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고, 1754년 교리(校理)를 지냈다. 1757년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으로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다.

1760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1763년 공초(供招: 죄인의 진술 조서)의 문서를 잘못 기록한 죄로 대정(大靜)에 유배되었다. 곧 풀려나 대사간·승지 등을 거쳐, 이듬해 동래부사로 재임하던 중 다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767년 다시 대사간이 되고, 1770년 좌승지를 거쳐 가선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772년 대사헌이 되고, 1779년(정조 3) 개성유수를 거쳐 뒤에 호조참판으로 은퇴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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