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화(子華), 호는 수오재(守迕齋). 영천군수 송이창(宋爾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이고, 아버지는 정랑 송광식(宋光栻)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현종말에 천거받고, 1680년(숙종 6)에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나아가 아산현감·덕산현감·익산군수를 역임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및 정(正) 등을 지냈다.
그 뒤 수원부사·충주목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한편, 장악원첨정으로 재직 때에는 초인(抄人)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송준길이 송병하를 가리켜 집안 식구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집의 어사손자가 될 재목이다.”라고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자손들에게 부귀는 천명에 있으므로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학문을 닦아 선인이 되면 복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