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아산현감, 덕산현감,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수오재(守迕齋)
  • 자화(子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은진(恩津: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 사망 연도1697년(숙종 2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아산현감|덕산현감|익산군수
  • 출생 연도1646년(인조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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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아산현감, 덕산현감,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화(子華), 호는 수오재(守迕齋). 영천군수 송이창(宋爾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이고, 아버지는 정랑 송광식(宋光栻)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현종말에 천거받고, 1680년(숙종 6)에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나아가 아산현감·덕산현감·익산군수를 역임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및 정(正) 등을 지냈다.

그 뒤 수원부사·충주목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한편, 장악원첨정으로 재직 때에는 초인(抄人)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송준길이 송병하를 가리켜 집안 식구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집의 어사손자가 될 재목이다.”라고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자손들에게 부귀는 천명에 있으므로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학문을 닦아 선인이 되면 복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동춘당집(同春堂集)』

  • - 『은진송씨금석록(恩津宋氏金石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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