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충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무오사화로 인해 교유하던 인물들이 처벌을 받자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한 학자.
이칭
  • 눌재(訥齋)
  • 원로(元老)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무오사화
  • 본관야로(冶爐: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 사망 연도1524년(중종 1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454년(단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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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무오사화로 인해 교유하던 인물들이 처벌을 받자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야로(冶爐). 자는 원로(元老), 호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현령 송윤(宋綸)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한창(韓昌)의 딸이다. 영천(榮川)에 거주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8년(성종 9)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과거를 준비하는 한편 김굉필(金宏弼)·최보(崔溥)·박담손(朴聃孫)·신희연(申希演)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덕행을 닦았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 교유하던 인물들이 화를 입어 처벌받게 되자 평소 이들과 왕래하였던 서간을 강물에 던지고 병을 빙자하여 향리에 내려가 서사(書史: 경서와 역사공부)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남효온(南孝溫)이 송석충을 평하기를 “성품이 강결하고 정직하며 명성과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영천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소고집(嘯皐集)』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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