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解麟, 984-107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불탑. 승탑.
이칭
  • 이칭법천사지 광국사현묘탑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강병희
  • 최종수정 2024년 11월 07일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전경 미디어 정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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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解麟, 984-107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불탑. 승탑.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 뒤편 탑비전 서쪽에 있었던 것인데, 1912년 강탈되어 일본 오사카후지와라 남작 가문의 묘지로 이전되었다가 1915년 조선총독부의 명으로 반환되어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근처로 옮겨졌다. 이후 동문 가까이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세워지자 박물관 경내에 있게 되었다.

한국전쟁 시 포탄의 피해로 옥개석 이상이 조각나 흩어져 있는 것을 195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건보수공사를 실시하여 복원하였다. 이 때 탑신 상면에서 방형의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내부는 비어 있었으며 뚜껑은 4~5쪽으로 파손되어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국립고궁박물관 앞 뜨락에 놓여졌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궁내 대부분의 석조물들도 함께 옮겨졌으나, 이 승탑은 이전 시 파손의 위험으로 인하여 그대로 남게 되었다. 2016년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로 옮겨졌고, 전면 해체되어 2020년에 이르기까지 부재 29점에 대한 정밀 보존처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2023년 8월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원주시 법천사터 유적전시관으로 복원 위치가 결정되어, 2024년 11월 마침내 승탑의 복원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높이 5.39m, 무게 39.4t에 이르는 규모이다.

역사적 변천

허균의 「유원주법천사기(遊原州法泉寺記)」에 법천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광국사현묘탑비문」에 지광국사가 구족계를 받는 999년 이전에 법천사를 방문하였고 국사가 된 후 1067년에는 이곳으로 돌아와 3년 후 열반하였음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전에 창건되어 고려 중기에 크게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도 한명회, 서거정 등이 이곳에서 수학하였음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어 법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589년까지 존속되다가 1592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어 절터는 부락과 전답으로 변하게 되었다.

한편 당간지주만 남은 절터와는 달리 절터 뒤편 동쪽 산자락 외곽지역 석축 위에 있었던 탑과 탑비는 20세기 초까지도 원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현재 탑은 1912년 이후 일본을 거쳐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 영역으로 옮겨졌으며 탑비만 원위치에 남아 있다.

내용

넓은 지대석 위에 2층 기단, 탑신, 옥개석, 상륜을 안정감 있게 올린 방형 승탑으로, 빈틈없이 각종 조식이 장식되어 있다.

기단은 하층 기단 하대석이 3단으로, 제1단은 4매로 층단과 같은 낮은 면에 하대, 우주와 탱주, 갑석을 모각한 후 각 면에 귀꽃이 솟은 안상을 조각하였으며 위로 낮은 1단의 괴임이 있어 상층이 올려져 있다. 네 모서리에는 용의 발톱 같은 것으로 덮여 지대석까지 이어지며 탑을 지면에 안착시키는 듯하다. 제2단도 4매로, 측면 중앙에 귀꽃이 솟은 연판을 2중으로 장식하였으며 윗면에는 각, 호의 윤곽을 둘러 윗단을 받고 있다. 제3단은 하층 기단 중대 면석이 함께 조출된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우주와 탱주가 모각된 3단의 면석, 각, 호, 각의 괴임대, 역시 우주와 탱주가 각출된 하층 기단 중석이 차례로 표현되었다. 3단 면석에는 국화문이, 하층 기단 면석에는 구름과 화염 속의 보주가 조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은 1석으로 측면에 장막을 표현하는 2단의 횡선문과 연주문이 있으며 상면에는 3중의 연화가 둘러져 있으며 4귀퉁이에는 사자가 안치되었던 2개의 원공이 있다. 하면에는 낮은 부연을 두고 상층 탑신을 받치는 곳에는 호형의 윤곽이 둘러져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1석으로, 탑신석과 같이 높으며 각 면에는 2개의 장방형의 액자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남쪽 사리봉송장면, 북쪽 산수문, 동서쪽에 운룡문과 신선문을 새겼다. 갑석은 상단 네 귀퉁이가 살짝 올려져 반전하고 있으며 측면에는 2단의 장막과 연화를 장식하였는데 상단 장막은 횡선과 연주문으로, 하단은 걷어 올려 끈으로 묶어 늘어진 모습이다. 갑석 위로는 1매의 괴임석을 두어 탑신석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1석으로 밑에는 탑신 받침이 모각되었는데, 측면은 작게 구획하여 귀꽃이 있는 작은 안상을 돌리고 위로는 3중의 연꽃을 새겼다. 면석에는 3개의 대나무로 표시된 우주를 새기고 남 · 북면은 문비를, 동 · 서면은 2구씩의 창을 모각하였는데, 문과 창은 모두 첨형 아치 형태이며 위로 영락이 늘어져 있다.

옥개석도 1석으로 전체 모습은 우동마루가 표현된 일반 석탑의 옥개석 형태이나 천개 모습의 처마에는 네 모서리의 가릉빈가를 비롯하여 보주, 불상, 비천 등이 가득 장식되었으며 밑으로 영락이 늘어진 휘장이 장식되어 있다. 상단에는 낮은 괴임을 두어 상륜을 받치고 있다.

상륜은 낮은 받침, 팔메트형 앙화, 복발, 보륜, 옥개석과 유사한 천개 형태의 8각형 보개, 2중의 연화 받침대에 올린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상륜부의 잘 보이지 않는 보개 하단에도 연화를 새기는 등 각 부재에 빠짐없이 문양을 장식하였다.

특징

선종의 발달과 전래로 9세기부터 중시되어 조성된 우리나라 승려의 묘탑은 8각 원당형이며 이는 고려 초까지 이어진다. 법상종 승려인 지광국사탑은 이러한 큰 틀을 벗어나 방형으로 조성되었으며 탑 전체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과 이야기, 독특하고 화려한 장엄 요소들을 복잡하지 않게 구성하여 전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다.

의의와 평가

지광국사는 법상종 승려로, 그의 탑은 기존의 선사 중심으로 조성되던 승탑의 조형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탑의 평면을 방형으로 변화시키거나 탑에 장식되지 않던 국화문, 변용된 귀꽃형 연화문, 대나무로 대체한 기둥을 사용하는 등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상층 기단 면석의 사리봉송도, 산수문, 신선문 그리고 탑신석의 첨형 아치형 문비와 창문 조각은 당시의 동서문화교류, 회화, 사상적 배경을 알려준다.

참고문헌

  • -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원 연구』(황나영,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법천사-원주 법천사지 2차 발굴조사』(강원문화재연구소, 2003)

  • - 『한국의 미』 15-석등·부도·비- (정영호 감수, 중앙일보사, 1983)

  • - 『신증동국여지승람』 6(민족문화추진회, 1982)

  • -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문」(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 2,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5)

  • -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에 관한 연구」(이영희, 『미술사학연구』173, 한국미술사학회, 1987)

  • - 「유원주법천사기」(허균, 『국역 성소부부고』2,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85)

  • -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의 사리공」(김희경, 『고고미술』63, 한국미술사학회, 1965)

  • - 「원성 법천사지 발견 석등 화사편」(김동현, 『고고미술』56·57, 한국미술사학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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