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협인석탑 ()

천안 보협인석탑
천안 보협인석탑
건축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중구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고려후기 특수형 석조 불탑. 석탑.
이칭
이칭
석조 아육왕탑(阿育王塔), 석조 전홍숙탑(錢弘俶塔)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보(1982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0 (장충동2가, 동국대학교)
정의
서울특별시 중구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고려후기 특수형 석조 불탑. 석탑.
개설

198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탑은 현재 한·중·일 삼국에 955년 명문의 동탑(銅塔), 965년 명문의 철탑(鐵塔)의 예들을 남기고 있는 오월왕(吳越王) 전홍숙(錢弘俶)의 8만 4천 탑의 모습을 따랐다.

정남향인 절터는 구룡사지라고도 부르는데 관련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현재 가람지 중단에 높이 1m 정도의 축대가 남아 있으며 4단의 평탄한 대지로 이루어진 산지가람 터에서 기와편, 자기편, 토기편, 치석된 석재들이 출토되었다. 기와편들은 고려 현종대 조성된 석탑과 비가 남아 있는 천흥사지, 봉선 홍경사지 출토 기와류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동반 출토된 청동 금고는 12세기로 편년되고 있다.

1967년 불법으로 반출되려는 석탑재와 주변에서 수습된 석재로 현재와 같이 복구되어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후에 절터 앞 개천 변에서 재차 발견된 2매의 파손된 관련 부재도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2018년 실시된 인문·과학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단면석과 기단갑석, 옥개석 받침석 등 일부 부재가 구조적으로 안전한 방향으로 배치되었으며, 하단에는 받침석이 새로 제작·설치되었다.

역사적 변천

탑의 양식과 형태는 중국 오대(五代) 오월국충의왕(忠懿王)전홍숙이 조성한 8만 4천 탑의 모습을 모범으로 하고 있다. 10세기 중반경 전홍숙은 많은 살상이 이루어졌던 전쟁 후 병이 발병하자, 탑을 조성하여 서사한 보협인다라니경을 탑안에 두고 공양하겠다고 서원하였다. 이후 치유되자 인도 아육왕의 사례에 따라 탑을 만들고 그 안에 서사한 보협인다라니경을 납치(納置)하여 그 탑을 대량으로 유포하였다. 당시 전홍숙 가문에서는 지금은 행방이 전해지지 않는 무현(鄮縣)의 아육왕탑을 가져와 항주 나한사(羅漢寺)에서 공양하였는데, 기록에 전하는 이 탑의 양식이 전홍숙이 배포한 탑의 양식과 동일하여 이를 차용하여 탑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전홍숙은 당시 천태 서적을 구하기 위하여 고려와 일본에 사자를 보냈으며 이 때 자신이 조성한 아육왕탑을 닮은 보협인탑을 다른 선물들과 함께 전했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에 다수의 전홍숙 발원의 명문이 있는 보협인탑들이 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남한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전홍숙 조성의 보협인탑의 예가 확인된다.

우리나라는 후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오월국을 비롯한 남중국과 왕래가 잦았는데, 전홍숙탑이 조성되는 시기인 고려 광종대에 천태학을 중심으로 오월(吳越)과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전홍숙은 천태 서적을 구하기 위해 고려에 50종의 보물을 보냈고 고려 승려 체관(諦觀)이 오월에 입국했으며 고려 원공국사(圓空國師)지종(智宗) 등의 30여 명의 승려와 적연국사(寂然國師)영준(英俊) 등의 유학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전홍숙 조성의 보협인탑이 10세기 후반경에 전래되었고 이어 이 탑의 영향을 받은 석탑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한편 보협인탑에 납치된 보협인다라니경은 1007년 전후에 고려에서 개판되었다.

내용

대평리사지 보협인탑은 원래 모습이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 복구된 탑은 기단, 탑신, 옥개, 상륜 순으로 중첩되어 있으나 결구상 불완전한 요소가 보인다.

지대석은 확인되지 않으며 기단은 각각 한 돌로 이루어진 중대석과 갑석이 중첩되어 있다. 각 면 3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중앙에 귀꽃이 솟은 안상과 그 위로 당초문양이 새겨져 있는 하대석은 파괴되어 2매의 조각으로 남아 있다.

기단 중대 면석은 각 면에 폭 6㎝의 테두리를 두고 그 안에 연화좌, 신광, 두광을 갖춘 2구씩의 선정인을 한 불상을 조각하였다. 각 면석에 새겨진 연화좌는 사이 잎이 표현된 끝이 뾰족한 형태이나 이 중 한 면에서만 둥근 연판의 모습이 보인다. 불상은 육계가 크며 통견의 법의는 가슴에서 Y자 형으로 여러 겹 겹쳐진다.

기단 갑석은 면석 하단에 1조의 선을 두르고 그 위로 당초문이 있는 24개의 U자형 장식, 2.5㎝ 길이의 횡선대, 연주문대를 차례로 돌려 장식하였다. 윗면에는 낮은 돌기를 두고 안으로 탑신을 받고 있으며 밖으로는 40판의 연화문이 중앙을 중심으로 경사지게 조식되어 있다.

탑신은 면석에 역시 5.5㎝의 폭으로 윤곽을 두르고 내부에 석가본생도인 시비왕할육사응구합(尸毘王割肉飼鷹救鴿), 살타태자투애사호(薩埵太子投崖飼虎), 월광왕손사보수(月光王損捨寶首), 수대나태자본생(須大拏太子本生)을 면과 선각으로 새겼다.

옥개석은 직사각형 면석 하단에 긴 사각형을 선각하고 내부에 당초 문양을 새겼으며 위로 횡선대와 24엽의 연화문을 돌렸다. 옥개석 상단에는 밑으로 당초문양이 있고 그 위 중앙에 여의두 양식의 귀꽃 문양이, 네 귀퉁이에는 마이형(馬耳形)이 솟아 있는 부재가 중첩되어 있다. 마이형 옥개부의 주변은 얕은 돌기로 구획하고 각 면석은 선으로 상, 하단을 구분하여 각 면에 석가모니 부처님 일생의 중요 장면들인 아시타 선인의 예언, 출생, 출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쳤던 칠보행, 깨달음, 설법, 쿤다의 최후 공양, 열반 등의 불전도를 새겼다.

상륜부의 복발은 마이형 옥개부 중앙에 함께 조성되어 있는데, 복발에는 각 귀꽃을 연결하는 십자 방향으로 연잎을 길게 조각하고 중앙에 불룩하게 심방을 표시한 뒤, 가운데에 깊이 12.8㎝, 직경 8㎝의 찰주 구멍을 뚫었다. 다른 부재는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기단 중석, 탑신석, 직사각형 옥개석 부재의 마주 보는 두 변 하단에 역사다리꼴 형태의 작은 구멍 2개씩의 존재는 그 정확한 용도와 결구 상황을 알 수 없다.

특징

탑의 기단부 불좌상, 탑신부 본생도, 옥개석 마이부의 불전도, 마이부 중앙의 복발 등의 모습은 현재 한국·중국·일본에 전하는 전홍숙 8만 4천 탑들과 닮아 있다. 그러나 기단부의 열주나 보리수 안의 불좌상이 이불병좌상으로 조성된 점, 탑신부 본생도에서 수대나태자본생이 등장한 점, 석탑으로 조성된 때문인지 세부 장식이 생략된 점, 마이부의 조각이 앞면에만 있다는 점 등에서 지역적 변용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10세기 중반경에 조성된 중국 오월국전홍숙의 보협인탑은 조성 당시 한국과 일본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경우 다수의 예가 남아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형태가 해체되고 출토지를 알 수 없으며 현재 소장자가 확인되지 않는 유구만이 논문에 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를 석탑으로 번안한 대평리사지 보협인탑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기단부의 이불병좌상으로의 변화는 당시 고려 사회와 조성자의 법화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되며 탑신부의 수대나태자본생의 등장은 1011년에 건설된 북송 장간사탑(長干寺塔) 지궁(地宮)에서 출토된 칠보 아육왕탑 탑신에 살타태자사호, 대광명왕시수, 시비왕구합명, 수대나왕의 명칭과 함께 도상이 새겨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유물이 좀 더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마이부의 경우도 전홍숙탑의 경우 955년에 조성된 동탑은 앞면에 신장상 8구를, 안쪽에는 선정인 불상을 조각하였고, 965년의 철탑은 앞면에 불전도, 안쪽에 신장상을 새기고 있으며, 장간사 출토 칠보 아육왕탑은 앞면에 불전도, 안쪽에 2구씩의 불입상과 불좌상을 새기고 있어 대평리탑의 모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탁본으로 엿본 천안의 염원-천안 금석문 탁본전』(천안박물관, 2010)
『천안 대평리사지 학술조사보고서』(김인한·백종오, 아우내문화원, 1996)
『문화재대관』국보(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국보』탑파(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3)
「중국 아육왕탑 사리기의 특성과 수용에 관한 고찰-동국대박물관 소장 석조 아육왕탑을 중심으로」(최응천, 『동악미술사학』12호, 동악미술사학회, 2011)
「오월왕 전홍숙의 불사리 신앙과 장엄」(주경미, 『역사와 경계』61, 경남사학회, 2006)
「보협인탑에 관한 연구」(안진용,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오월왕 전홍숙 팔만사천탑」(매원말치, 『고고미술』81호, 한국미술사학회, 1967)
집필자
강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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