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헌중(獻仲), 호는 취은(醉隱)·고은(孤隱)·고송(孤松)·눌암(訥庵). 송계성(宋繼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복리(宋復利)이고, 아버지는 군수 송연손(宋演孫)이며, 어머니는 김보첨(金甫添)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진사가 되고, 1502년 알성시(謁聖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상을 당하여 초상 중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벼슬에 오르지 않아 갑자사화를 면하였다. 이 때문에 스스로 ‘취은’이라 호하였다.
이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16년(중종 11) 능성현령(綾城縣令)으로 재직 중 방납(防納) 폐단의 제거, 책 인쇄로 인한 과중된 잡세(雜稅) 폐지, 군액(軍額) 충당을 위한 중[僧]의 추쇄(推刷: 세금수취의 인정단위가 될 수 있도록 일반 백성으로 환속시킴)와 절[寺]의 소각, 우전입마(郵傳立馬: 역참의 말을 길러 공용에 이용하던 제도)의 폐에 대한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 지방행정제도 개혁안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이 상소로 중종으로부터 포상을 받고 벼슬도 가자(加資)되었다. 뒤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에 이르러 병으로 사퇴하였다. 당대 문명을 떨쳤고 그림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다. 태인의 무성서원(武成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어면순(禦眠楯)』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