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鎭州: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 아버지는 국가의 전례(典禮)에 밝았던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송순(宋恂)이다.
어릴 때부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고종(高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금주현령(金州縣令)이 되어 청렴과 공평으로 그 치적이 드러났다. 그 뒤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를 거쳐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어 우창(右倉)을 감독하면서 많은 청탁에도 공정히 업무를 시행하였다.
몽고의 3차 침략이 진행 중이던 1238년(고종 25)에 장군 김보정(金寶鼎)과 함께 몽고에 상표(上表)하여 철병(撤兵)을 요구하였다. 1240년에는 예빈소경(禮賓少卿)으로, 2년 뒤에는 시랑(侍郞)으로서 각각 몽고에 다녀오는 등 몽고와의 화의교섭(和議交涉)을 진척시켜 잠정적이나마 양국 사이의 평화관계를 유지하는 데 공헌하였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단명(短命), 슬피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