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주(榮州). 조상은 대대로 향리(鄕吏)였으며, 아버지는 호장(戶長) 송약규(宋若規)이다.
향읍(鄕邑)에서 향리업무에 종사하던 중 1151년(의종 5) 무재(武才)로써 병마사(兵馬使)에게 선발되어 정용(精勇)에 편입되고 그 뒤 여러 차례 승진을 거듭, 낭장(郎將)에 이르렀다.
1174년(명종 4)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난을 일으켰을 때 안북부(安北府)의 도령(都令)으로서 화살을 맞으며 필사적으로 방어하여 전공을 세우고 이듬해 중랑장(中郎將)이 되었다. 그 뒤 1193년에 장군, 1195년에는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에 이르렀다. 1198년(신종 1)에 작성한 묘지석(墓誌石)이 전하고 있다.